"엄마, 숙제 매일 해야 돼? 나 곱셈 단원평가 80점 맞았어. 그럼 숙제 안 해도 되지 않아?"
어제저녁 학습지 숙제가 하기 싫은 딸의 푸념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문제집을 툭 던지며 책상에 앉는 그녀. 온몸으로 숙제하기 싫음을 표현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 또한 궁금했었다. 숙제는 왜 매일 있는 것이며, 꼭 해야 하는지를. 미루고 미룬 방학 일기를 개학 3일 전에 부랴부랴 해치웠던 몇 해를 보내고, 친구들과 노느라 영어 숙제를 해가지 않아 선생님께 혼쭐이 나고서야 깨달았다. 작아 보이는 그날의 분량을 하루 이틀 건너뛰다 보면 큰 산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며, 미뤄둔 숙제의 양을 쳐다보면 더 하기 싫어진다는 사실을.
숙제 없는 어른을 상상하며 중•고등학생 시기를 버텼고, 드디어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까지 했으니 숙제에서 해방됐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한 기쁨도 잠시. 리포트와 팀 과제, 발표 수업 준비 등으로 해방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숙제와 같은 매일의 업무 일지와 회의 일지를 쓰느라 헉헉댔다. 첫 직장인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조사 보조원으로 일하게 된 나는 매일 발굴조사 일지를 써야 했다. 날씨, 인부와 장비 체크, 유구의 조사 상태와 출토 유물, 참고 자료 등 써야 할 항목이 많았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했기에 퇴근 후에는 그냥 눕고만 싶었다. 매일 그 마음을 뻥 차버리고 책상에 앉아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조사일지를 작성했다. 오늘의 일지를 쓰지 않으면 다음날 어제 것까지 써야 했고, 그러면 더 하기 싫어진다는 사실을 학창 시절에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발굴 현장에 조사팀장 선생님께서 방문하셨다. 보조원들에게 조사한 유구의 특징을 물으시더니 갑작스레 조사 일지를 확인하시는 것이 아닌가. 떨리는 마음으로 당시 조사 중이던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설명했고 매일 썼던 조사 일지를 보여드렸다. 내가 작성한 조사 일지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시며 이렇게 매일 꼼꼼히 쓰라고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성실하고 신뢰를 주는 직원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매일 숙제를 하든 안 하든 당장은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꾸준함은 끈기와 노력이라는 가치를, 그리고 실력 향상을 가져다줄 테다. 매일 숙제하는 좋은 습관은 보이지 않는 통장에 조금씩 저축하는 것과 같아서, 훗날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는 밑천이 될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 큰일의 시작인 것을 딸이 매일의 숙제와 합기도 수련을 통해 알아가기를. 그녀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책상에 앉겠지. 딸을 위한 맞춤형 대답을 준비한다.
"오늘 안 하면 내일 오늘 것까지 같이 해야 돼. 그러면 더 힘들지 않을까? 연산은 매일 해야 실력이 늘어. 합기도도 매일 수련하니까 검은 띠 따게 되잖아."
너의 이름으로 된 보이지 않는 통장에 오늘의 숙제를 저축하렴. 엄마는 엄마의 통장에 오늘의 쓰기를 저축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