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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Jul 12. 2024

습관은 체력에서 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다.

퇴사 후 1쯤 지난 어느 날, 글쓰기 수업의 문을 두드렸다. 매주의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뭐라도 잡고 싶어 ‘매일 쓰기’를 다짐했다. 의욕만 앞섰던 나는 야심에 찬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오전에는 블로그 글쓰기와 글쓰기 수업의 숙제를, 오후에는 캘리그래피 글자 연습을 하기로. 하루 이틀은 계획대로 되어가 쓰는 습관이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작심삼일은 나를 비켜 가지 않았다. 나흘째부터 피곤함과 졸림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쓰기를 건너뛰는 날이 늘어났다.  

   

'쓰기 습관이 왜 안 잡히지?'   


한참 동안 그 질문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에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81p     



나에게는 습관을 지속할 체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글쓰기 습관이 궁금해 다른 책들도 뒤적여 보았다. 그는 무려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와 수영으로 체력을 관리한다고 한다. 이 습관을 40여 년 동안 유지하다니, 놀랍고 존경스럽다. 습관의 대명사라 불릴 만하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한다.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까우며,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장기간 동안 필요로 한다고. 거장이 될 수 없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재능의 절대량의 부족분을 각자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여러 측면에서 보강하여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라고. 반복과 습관을 통한 훈련으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 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설가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키가 선택한 훈련은 달리기다. 그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고 한다.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달리면서, 그가 선택한 훈련에 익숙해지며 글쓰기에 대한 의문들도 해소해 나갔던 듯하다. ‘매일 달리기’라는 습관을 기반으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장편 소설 15권, 단편 소설 75편, 수필집 24권을 비롯하여 르포르타주, 번역서를 발표했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을 일으켰고,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 안데르센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마라톤 대회까지 출전한 진정한 러너 하루키. 달리기가 강인한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선사하여 그의 작가로의 성취를 보조해주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숨이 턱까지 차는 느낌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루키처럼 달리기는 자신이 없어 ‘매일 걷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동네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답사를 갈 때나 약속이 있을 때는 가능한 곳까지 일부러 걸어서 갔다. 헬스 앱이 알려 주는 그날의 걸음 수를 채워나가면서. '오늘은 몸이 무겁다. 어쩐지 걷고 싶지 않은데.'라고 느껴지는 날조차도,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켜 매일 걸었다. ‘매일 걷기’ 습관이 몸에 배니 쓰기 습관도 자리를 잡아갔다. 피곤함이 덜했고 조는 횟수도 줄어 자연스레 집중력이 늘었다. 걷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짧은 시간 안에 글쓰기 숙제를 완성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글자를 손으로 쓸 수 있었다.

걷는 행위가 하루 세 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걷기 위해 제대로 된 워킹화도 사고 땀 흡수가 잘 되는 옷도 구매했다. 습관 만들기 초보를 위한 책도 빌려서 읽어보았다. 이렇게 나는 걷는 사람, 쓰는 사람이 되어간다.     


습관도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튼튼한 몸이 받쳐주는 지구력으로 버티는 시간이 있어야 기회가 와도 잡을 기력이 있을 것이다. 나의 쓰기를 보조해 주는 매일 걷기. 쓰기의 큰 성취를 이루는 날이 온다면, 매일 걸었던 동네 공원과 나의 두 다리에게 깊이 감사하게 될 것 같다.


동네 공원의 사계절, 그리고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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