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나에게 없으나 가지고 싶은 것들, 하고 싶으나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을 올려다보며 불평할 때가 많다. 이는 아이나 어른이나 비슷한 듯하다. 얼마 전 아들과의 대화이다. 원하던 게임(마인크래프트)을 유료 결제해 준 다음 날이었다.
아들: 엄마, 나만 브롤스타즈 게임이 없어. 현질 해주면 안 돼? 나: 그래? 마인크래프트 어제 사줬잖아. 그거 하면 되지 않아? 마인크래프트 없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아들: 그렇긴 하지. 나: 있는 게임에 감사하지 않고 없는 게임만 생각하면서 불평하면 엄마가 기분이 좋겠어? 새 게임 사준 지 하루밖에 안 지났잖아. 아들: (뾰로통한 표정으로) 네…
정답 같은 말을 아이에게 하긴 했지만, 나 또한 있는 것에 감사하기보다 없는 것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많다. 외모나 성격, 능력, 심지어 옷·신발 등의 물건까지도. 감사에 관한 책들에서, 목사님의 설교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기. 과연 가능할까? 원하던 물건을 가졌을 때, 계획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나 문제가 없을 때는 감사의 고백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고통이라 여기는 상황조차 감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이 진짜 감사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 일이 결과와 상관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감사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훈련과 신앙교육을 시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넌지시 담아서. 남매는 적을 게 없다고 뭘 써야 하냐고 자꾸 묻는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게 싫어 몇 번을 구시렁대다 연필을 잡는다. 아이들은 뭔가 특별하고 신나는 일이 있어야 감사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필요하고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야 감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 감사노트를 채우지 못하고 푸념만 늘어놓는 그들. 입이 댓 발 나온 남매를 보며 감사도 습관이며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짜 감사는 한 번에 되지 않으며 자꾸 해야 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학교와 학원, 집에서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떠올리게 하며, 며칠 감사 연습을 시켰다. 그러자 감사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와서 감사, 엄하지 않은 다정한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 맛있는 급식을 먹어서 감사, 합기도 학원에 다녀서 감사, 어려운 분수 수학 문제를 이해해서 감사,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감사 등.
이벤트가 없어도 일상의 감사를 알아가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감사로 꽉 채우는 여름방학을 보내기를.
감사를 연습하다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감사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특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는 감사의 고백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물리쳐 주고 성공의 방향에 서게 할 것이다.
나 또한 감사를 연습한다. 방학이라 내 시간이 줄어들어 취업 준비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엄마라 감사하다는, 진짜 감사를 해본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두며 말이다. 처음부터 뚝딱 잘 해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엉덩이 힘이 많이 필요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성향이라 감사하다. 내가 가진 끈기와 인내가 '쓰기'라는 방향으로 걷게 하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아니한가. 나에게 있는 글쓰기 재능에 감사하며, 오늘의 쓰기를 완성하는 하루를 보내야지. 그래서 일단 브런치북 연재의 마감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