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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ug 02. 2024

보통의 일상이 주는 행복

한동안 주말 드라마에 한껏 몰입했었다. 배우들만 바뀌는 것 같은 주말 드라마의 반복되는 서사구조를 보며 느낀 점은 주인공과 대치하는 조연들은 대부분 욕망에 가득 찬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며, 우연히 만난 착하고 예쁜(멋진) 주인공의 연인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주인공에게 열등감까지 있는 조연은 주인공의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광기와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악랄하고 비열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되도록 작가가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완성은 정해진 결말일터. 욕망에 찬 조연의 외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권선징악의 서사가 절정에 달하는 마지막 회에서 그들의 죄가 밝혀지며, 악역인 조연들은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갑자기) 그동안의 몹쓸 짓들에 용서를 구하고 죗값을 치르러 간다. 심지어 주인공들의 사랑을 응원까지 하면서. 그리고 ‘몇 년 후…’ 개과천선한 조연들은 진짜 행복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거나 다시 말단 사원부터 시작하는 등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주말 드라마의 애청자로서, 마흔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게 되는 것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뚜렷한 결과가 있어야 성공이라 여기며 멀리서 행복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보통의 일상이 주는 행복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20대에는 높은 학점,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에 취업, 연애, 학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성공이라 여기며 달려갔다. 30대에는 비범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 딸 낳아 다재다능한 아이로 키우기, 일하며 살림도 잘 하는 워킹맘 되기, (20대로 보이는) 동안 외모 갖기를 바랐다. 그래야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내 바람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하고 싶은 일을 했지만 정규직이 못 되고 퇴사했다. 대학원 입학 후 7년 만에 논문을 쓰고(한 번은 퇴짜 맞고 두 번 만에) 겨우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의 학문적 성과는 학계에 영향력이 전혀 없었고 그 과정을 통과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들은 대한민국 보통의 초등학생들이다. (남매 출산은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일상이 무너지고 평온하던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는,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칠 때가 있었다. 그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다 보면 보통의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온다. 어떤 불행이든 지나가게 마련이라 불행의 바람이 어느 정도 잠잠해져 일상을 회복하고 정돈하면 그제야 한숨 돌린다. 당연하게 여겼던 보통의 일상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이제는 안다. 딱히 설레고 흥분되지는 않아도, 당장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매일의 삶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임을. 보통의 평범함도 성공에 가까운 삶인 것을. 웃으며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침, 매일 하는 운동과 산책, 근심 없이 산뜻한 기분으로 먹는 밥과 커피, TV 보며 하하 호호 거리는 주말, 편안히 잠드는 밤 등.
보통의 일상이 주는 행복의 순간을 매일매일 포착하여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리라. 이왕이면 '오늘'이라는 일상을 가장 아름다운 날로 써 내려 갈 수 있기를.


매일매일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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