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부자인 할머니 돼."
9살 딸의 단호하고 귀여운 신신당부다.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나이보다 젊어 보여야 하고, 경제적 자유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외모와 경제력이 덕목인 시대가 되니 잘 늙는 할머니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잘 늙고 싶다는 바람은 나 역시 있기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잘'의 뜻을 찾아보았다. 무려 14가지나 된다. 옳고 바른, 훌륭한, 능숙한 등 좋은 의미를 다 지녔다. 그중에 `옳고 바르게'와 '아주 멋지게 또는 아름답고 예쁘게'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옳음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을까.
늙는다는 것은 노화를 뜻한다. 눈가는 자글자글, 머리는 흰머리가 고개를 들고, 군살 붙은 아랫배와 살은 시간을 먹고 늘어난다. 그런데 외적인 아름다움만 아름다움일까?
노화라는 몸이 주는 사인은 아쉽지만 나이 들며 좋아지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 쌓이고 경험도 쌓여 그것이 통찰력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침식과 퇴적을 반복한 인생의 경험들은 통찰력이 되어 세상을 꿰뚫어 보고 인생을 넓고 깊게 바라보게 해준다. 그러니 돌이켜보면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켜켜이 쌓인 경험과 통찰력을 말과 글로 잘 전달한다면 옳고 아름답게 늙지 않을까. 노화 과정은 계속되지만 내적으로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더욱 아름다워지고 단단해지리라.
소파에 누워 기운 없이 리모컨만 돌리는 삶이 아닌, 내적인 활력으로 생기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딸의 자녀가 건네주는 책을 함께 읽는 할머니, 앞으로 멀리 다니라고 지구본을 사주는 명랑하고 총명한 할머니.
그래서 매일 걷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취업을 준비한다. 더불어 아이크림과 수분크림도 듬뿍듬뿍 바른다. 멋지고 아름답게 늙기 위해.
나의 노년을 걱정하는 딸에게 그녀의 눈높이로 안심시켜 주었다.
"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멋진 할머니 될 거야. 그래서 지금 열심히 걷고 책 보고 글도 쓰는 거야. 나중에 엄마가 쓴 책에 맞춤법 틀린 거 찾아줘. 그리고 같이 팔찌, 발찌, 브로치 반짝반짝 걸치고 다니자.”
*사진 출처: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어요: 구딩 노부부처럼>, 긴숨, 서랍의 날씨,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