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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ug 16. 2024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는 우리

남녀는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진, 전혀 다른 존재이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있을까. 각기 다른 두 남녀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기에 갈등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남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갈등이 당연함을 인정하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우주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역설적으로 사랑해서 싸운다.
우리 부부는 신혼 때 사소한 습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했다. 남편의 취미는 일렉 기타 연주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 기타 연습을 했고, 요즘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유명한 연주를 보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나는 신혼 때 저녁 식사 후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방으로 들어가 기타 연습을 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보다 기타가 좋지?”라는 시비조의 말을 해 싸움으로 이어졌다.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한 어느 날, 남편이 자꾸 충고와 조언의 말을 해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문제가 생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누군가와 얘기하기 전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의 마음을 남편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원한 것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잠시 혼자 있고 싶었을 뿐. 혼자 생각을 정리하거나 머리를 식히며 남과 말할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거리를 두지 않는 밀접한 관계를 사랑이라 여긴 것은 아닌지. 함께 할 때의 즐거움은 알았지만 서로 혼자 있도록 허락했을 때의 기쁨은 알지 못한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너와 내가, 함께 할 때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는 몇 번의 부딪힘을 통해 알아갔다.

결혼 10년 차가 넘으니 이해되지 않아도 상사의 업무지시를 수행해야 하는 직장인 스트레스, 남매를 출산하고 양육하며 어쩔 수 없이 받는 육아 스트레스로 힘겨워하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룬 가정을 잘 세워가자는, 목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의 뜨거운 동지애가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은 서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기꺼이 허락한다. 그 시간을 보내고 오면 한결 밝아진 얼굴로 가족을 대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2시간 동안은 아빠 기타 동영상 보는 시간이야. 아빠만의 시간 방해하지 말고 우리는 할리갈리 하자. 그래야 아빠가 더 신나게 너희와 놀 수 있어."
"이번 주 토요일은 엄마 혼자 카페 가는 날이야. 엄마만의 시간을 가져야 다음 주에도 너희와 잘 지낼 수 있어. 이번 주에는 아빠랑 공원 놀이터 갈까?"

작년, 남편은 회사 사정으로 6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했었다. 아이들 방학까지 겹치니 온종일 집에서 함께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함께 해도 거리를 두면서 크게 싸우지 않고 그 시간을 건너왔다. 함께 할 때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힘써 해주고,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해 주면서. 어쩌다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맛집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같이 즐겁게 먹는다. 그리고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로 가서 약간의 대화 후, 각자 챙겨온 노트북을 꺼내 자신의 것을 한다.

마음껏 사랑하되 사랑을 이유로 구속하지 않고, 서로 마음을 주되 옭아매지 말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나 서로 혼자 있도록 허락하는 것. 함께 있으되 바람이 지나갈 정도의 거리를 두면서.

함께 산 날보다 함께 할 날이 훨씬 더 많은 세월 속에서, 그렇게 사랑하기를.



*커버사진: © harlimarte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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