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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ug 30. 2024

섬 아이와 양념게장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하지만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지는 않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 나는 도시의 삶을 동경하던 섬 아이였다. 어린아이에게 섬 생활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아이스크림은 오직 여름에만 먹을 수 있었고, 호빵은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간식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 여수. 그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은 들어가야 나의 고향 섬 낭도가 보인다. 넓고 푸른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고 우뚝 솟은 산이 뒤에 있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업도 함께 하는 곳이다. 우리 집은 바다와 이웃들의 집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자리한 빨간 지붕의 시골집이었다. 육지의 삶을 간절히 바라던 나의 바람이 통했는지, 엄마와 우리 남매는 내 나이 11살 무렵 육지로 나왔다.


사계절 내내 아이스크림과 호빵을 먹을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은 곧장 살 수 있는 육지 생활이 즐거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양념게장이 그리웠다. 할머니의 정다운 품과 할아버지의 담담한 사랑이 생각나는, 남쪽 바다의 맛이 확 느껴지는 할머니표 양념게장. 요즘은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고 하지만 남쪽 섬마을에서는 양념게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섬에서 먹던 양념게장은 꽃게의 사촌쯤 되는 돌게(민꽃게)로 만들었다. 요즘 시중에 판매하는 게장은 대부분 꽃게로 만들지만,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돌게장은 여수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박하지로도 불리는 돌게는 꽃게보다 껍질이 딱딱하고 크기가 약간 작다. 섬의 돌게는 꽃게처럼 속살이 꽉 차지는 않았으나 등딱지에 알과 내장이 가득히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손수 잡으신 싱싱한 돌게를 손질하고 갖은양념을 넣으셨다. 섬마을 방앗간에서 빻은 투박한 고춧가루, 두 분이 농사지은 참깨를 짜서 만든 고소하고 향긋한 참기름 등의 섬마을 표 재료들이 들어가 더 특별했다. 군침 도는 매콤한 양념장에 보들보들한 게살의 조화가 예술인 양념게장. 고소하면서 비릿한 내장의 풍미까지 더해져 흰밥과 함께 자꾸만 먹고 싶은 밥도둑. 손에 들고 쪽쪽 빨아먹고 양념장에 밥 비벼 먹는 손녀를 할머니는 흡족하게 바라보셨고, 나의 먹성을 이웃들에게 자랑하셨다. 어느새 섬에서 나의 별명은 양념게장 먹보 '게보'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내게 특별한 이유는 예닐곱 살의 우리 남매를 부모님 대신 키워주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오냐오냐’ 하지 않으셨다. 아들을 먼저 땅에 묻고 그 아들의 자녀가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하셨을까. 일 때문에 잠시 섬을 떠난 며느리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그러셨는지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엄격하게, 그리고 정성껏 훈육하셨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알려 주셨고, 예의 바르게 키우셨다. 산에서 바닷가에서 노느라 꾀죄죄한 우리 남매를 흙먼지, 모래 먼지 탈탈 털고 씻겨 교회에 데리고 가셨다. 바닷바람처럼 강인하고 바닷속처럼 깊은 두 분의 사랑 덕분에 우리 남매는 밝고 올바르게 자랐고, 결혼해 각자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자녀를 훈육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마음이 가늠이 잘 안 된다.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어떤 맘으로 애를 쓰며 키우셨을지.


10년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점차 쇠약해지셨고, 아흔이 넘으시니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작년 추석에 오랜만에 할아버지 산소를 둘러보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할아버지, 예전의 강단 있는 모습이 아닌 너무나 쇠약해지신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 더욱 마음이 아픈 건 그렇게 예뻐하던 손주들도 종종 못 알아보신다는 사실이다. 할머니의 머릿속을 흐릿하게 하는 치매라는 녀석 때문에.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섬 아이로 남아 있겠지. 투박한 단발머리에 볼록한 볼이 유난히 빨갰던 먹성 좋은 아이로. 할머니의 희미한 기억 속에라도 손녀를 남기고 싶어 며칠 전 섬마을의 집 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할머니께 큰소리로 외쳤다.


"할머니, 저 '게보'에요. 옛날에 할머니가 만든 양념게장 잘 먹던 먹보 손녀요."


여수에서 상경해 오랜 시간 서울시민으로 살다가 얼마 전 인천시민이 되었다. 바다가 배경화면처럼 자리한 도시에서 섬 아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학교에서 배웠다고 흥얼거리는 「나의 고향」을 진심을 담아 따라 부른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지는 않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이제 그 속에서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육지에서 할머니표 양념게장이 그리운 이유는 어린 나를 정성스레 키워주신 두 분의 품에서 투정을 부리고 싶어서일 테지. 힘겨운 육지 생활의 고달픔을 매콤하고 보들보들한 양념게장으로 풀고 싶어서다. 돌게의 단단한 등딱지를 까면 보드라운 속살이 드러나듯 표현은 투박해도 속마음은 누구보다 손녀를 사랑하는, 부드럽고 따스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할머니표 양념게장을 먹을 수 있을까. 친구와 들른 인천 연안 부두의 한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을 앞에 두고 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다.


나의 고향, 낭도


*커버사진 출처: 오뚜기 푸드에세이 공모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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