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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Sep 06. 2024

3·1절, 그리고 너와 나의 독립

"엄마, 왜 개학이 3월 2일이야?"
"우리나라의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을 기념하는 날을 국경일이라고 해. 그날은 태극기 달고 쉬는 날인데, 3·1절은 국경일 중에 하나야.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자기 나라로 만든 일제강점기란 시대가 있었어.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나쁘고 잔인한 행동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을 펼쳤어.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도시와 농촌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게 돼. 그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이 3·1절이야."
"와~진짜? 우리나라 멋지다."

개학일이 왜 3월 첫날이 아닌 둘째 날인지 9살 딸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TV를 켜고 3·1절 기념식 방송을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유관순 기념관에서 진행된 기념식은 국민의례, 주제 영상 상영, 독립선언서 낭독, 독립유공자 포상, 대통령의 기념사, 기념 공연, 3·1절 노래 제창, 만세 삼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길고 지루한 행사에 아이들은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만세 삼창 순서에서 화면을 유심히 보던 아들이 한마디 했다.

"저기 있는 분들 만세 하는 자세랑 표정이 어색해. 하나도 안 기쁜 것 같은데?"

아들의 말을 듣고 참가자들을 보니 그들의 만세는 어딘가 어색하다. 일부의 사람들만 독립에 감격스러워 보인다. 독립을 향한 간절함과 열망이 이제는 없어도 되기 때문일까? 이미 독립된 땅에서 자유롭게 사는 자들의 여유일까?

3월 2일, 개학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서울 인사동에 자리한 태화빌딩에 가보았다.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이 있던 태화빌딩. 1층의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를 보며 1919년 3월 1일, 그날을 상상해 본다. 옛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이후 조선 팔도로 퍼진 만세운동을. 간절한 마음으로 목놓아 외친 만세와 조국의 독립. 일제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진압에도 비폭력으로 저항했던 그날.
당시 조선 사람 대다수의 꿈은 아마 독립이었을 테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한 나라의 당연한 권리인데, 그것을 주장하고 누리지 못했던 그때.
목숨 걸고 독립을 외치고 싸운 그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는 독립된 조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나라를 위해 애써 주신 수많은 분께 감사하는 105주년 3·1절 다음날이었다.

(좌)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과 태화빌딩,  (우) 태화빌딩 1층의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


'독립'을 나라에서 개인으로 옮겨와 적용해 보자. 삶 속에서 독립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전에서 독립의 뜻을 찾아보니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라고 알려준다.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아야 하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진짜 독립의 의미일 테다.

부모가 되어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자녀라는, 엄마에게 예속된 존재로 대할 때가 있다. 내 생각과 취향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기도 하면서.
남매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한동안 책 육아가 유행이었다. 나도 그 흐름에 발을 담그고자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전집도 알아보고 학습지 선생님과 상담도 받으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기대만큼 책을 보지 않았고, 독서를 강요하는 엄마에게 반감을 표시하고 심지어 책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아이들의 그런 반응이 속상하고 화도 났다. 며칠 후 일기장을 보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적은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너라서 사랑할게.’
첫 마음과 달리 나는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내 기대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양육자가 되어 있었다. '나의' 자녀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고자, 남매의 노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해 보았다. 아들은 말하면서 레고 조립하는 것을 즐겼고, 딸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관련 책을 보여주며 책에 나오는 캐릭터를 레고로 만들어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딸과는 예쁘고 감각적으로 꾸민 도서관을 찾아서 다니고 독서 프로그램에 보냈다. 책을 보진 않아도 일단 가까이해보라는 마음에.

예전보다 책을 들여다보는 그들을 보며 마음먹는다.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린 자녀라도 독립된 존재로,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겠다고. 아이들의 자유와 미래, 그리고 나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커버사진 출처:『태극기 다는 날』, 김용란·강지영, 한솔수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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