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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Sep 20. 2024

광복절, 대한민국의 명예를 회복하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종전 조서(終戰詔書)>를 읽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본 내각은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 이 방송을 통해 자국민에게 일본의 항복을 알리게 된다. 일본에서는 천황의 육성을 들려줬기에 '옥음방송(玉音放送)'이라고 지칭하나 대한민국,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는 방송의 목적을 강조하여 '항복 방송, 혹은 '종전 선언'이라고 부른다.
한편 '항복 방송'에는 '무조건 항복하겠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국, 영국, 지나(중국), 소련 4개국의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라는 문구에서 이 조서의 성격이 드러난다. 전쟁은 군부와 정부 내각에 책임이 있고 자신은 죄가 없다는 식이다. 천황은 침략 전쟁을 주도한 이가 아니라 위험에 처한 일본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해낸 '인류 문명의 보호자'로 포장하여 천황제 유지에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구나 주요 피해국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불행히도 이 조서는 전후 일본의 전쟁 책임 회피와 우익들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버린다. 더구나 미군 주도의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A급 전범인 천황 및 전쟁에 협력한 관료와 재벌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자위대의 병력을 늘리고 자위대를 명기한 헌법으로 개헌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커녕 역사를 왜곡하는 지금 일본 정부의 모습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예롭게 회복하다’라는 뜻의 '光復’.
빼앗긴 주권과 영토를 도로 찾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감격스럽고 환희에 찬 순간이 아닐까?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거리로 뛰쳐나왔다. 집 안에 몰래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맘껏 외쳤을 것이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 수립, 민족실력양성운동, 항일무장투쟁, 사회주의 민족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민족의 노력과 국제 정세의 변화 덕에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광복은 우리 민족이 꾸준히 독립운동을 벌인 결과이지 연합군의 승리에 따라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1941년에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강령'을 발표하여 정부를 꾸릴 계획을 세웠고, 국내에서는 1944년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우 합작 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하였다. 해방 후 ‘조선건국동맹’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되어 발 빠르게 총독부로부터 치안유지권과 일부 행정권을 인수받았다. 일본 관리들이 떠나 치안이 없어진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세계가 놀랄 정도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이 빛나고 영광스럽다. 우리는 빛나게, 영광스럽게 대한민국의 명예를 회복해 '光復'을 이룬 독립된 조국에 살고 있다.


올해 광복절에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광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무더위에 길을 나섰다. 인천개항박물관은 옛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을 2010년 리모델링하여 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총 4개의 전시실에 1883년 개항 이후부터 일제 강점이 시작되는 1910년 이전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개항기의 인천 풍경에서부터 근대 문물까지 다양한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인천의 개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돔 형식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근대 건축물의 예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내부의 높다란 층고의 공간과 화려한 커튼과 조명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들(특히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설립하여 조선인들을 수탈하는데 앞장섰던 곳이기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인천개항박물관 외부, 내부 전경

내부로 들어가니 제1전시실에 자리한 대형 태극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자기 키만 한 태극기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광제호 태극기 세부모습

“엄마 이 한자 ‘빛 광’ 맞지?
“우와~벌써 그 한자를 알아? 우리 딸 한자 소녀네, 멋지다!”

한자를 배우고 있는 딸이 본인이 아는 한자가 나오니 아는 체를 하며 묻는다. 인정받고 싶은 딸의 마음에 반응해 주고, 광제호 태극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가로 83.5㎝, 세로 135.5㎝ 크기의 광제호 태극기는 대한제국의 군함인 광제호에 게양하던 태극기이다. 신순성 함장이 경술국치 전날 거둬들인 뒤 인천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에게 전해오고 있으며, 1910년대에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45년 그날 거리에 넘실댔던 태극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눈앞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태극기를 보기 바랐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수습하고 잘 보관한 신순성 함장과 그의 후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기장에 기록한, 의미 있었던 79주년 광복절이었다.


*커버사진: 『개똥의 1945』, 권오준·이경국, 국민서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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