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딱 정해졌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잖아? 양반은 양반 노비는 노비 불평등은 당연했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랑의 탓이 아니었지. 지금은 개인의 탓이야 그러니 불안이 일상화된 거라고나 할까? -<검은 개가 온다>, 송시우
'검은 개가 온다'
제목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 책 소개를 살펴보니 제목의 '검은 개'는 우울증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심신의 고통과 사회적 기능 손상을 일으키는 질병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이미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이며, 현대 한국인의 우울과 불안은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작가는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하는 것에 대한 상반된 입장,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 등 정신질환 문제를 두 건의 살인 사건을 통해 다각도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타자로 분류되는 우울증 환자가 나와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의 문장에서 '불안의 일상화'라는 말이 와닿는다. 그런데 신분제가 폐지된 후 왜 불안이 일상화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신분제가 폐지된 때는 130년 전,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서다. 500여 년간 지속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제가 폐지된 것이다. 양반들은 노비와 같은 신분이 되는 현실을 거부하고 불쾌해했을 테다. 반면에 중인과 상민, 천민들은평등한 세상을 꿈꿨기에 얼마나 기뻤을까.또한 허울뿐인 양반들에게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단박에 신분제가 사라지고 세상이 변한 것은 아니었기에, 기존 신분들 간의 불안한 충돌이 계속되었다. 사회가 불안한 것은 당연했으며, 신분제 폐지 후 사회적 불안이 일상화됐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신분제가 폐지된 사회에 차츰 사람들은 적응하며 실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을 테다. 완전하지 않지만, 개인의 성취대로 인정받는 사회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 사회적 불안이 점차 해소되자 개인적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이제 신분 탓, 사회 탓만 할 수가 없고, 내 탓도 해야 하기에
지금의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불안을 겪으며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효율성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수시로 바뀌고 내 마음처럼 안되는 세상.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불안에 달달 떨면서 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일상은 불안해도 마음은 안정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불안을 해소하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을 하면서. 나의 경우 그것이 기도와 글쓰기다.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어떠한 기준에 부합하여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