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정조의 꿈과 조선의 실학 정신이 깃든 곳

by Jihye
수원화성 관람정보​
▪︎관람시간: 상시(연중무휴)
행궁 야간개장: 2025.5.3~11.2 기간 중 매주 금~일요일(야간개장 18:00 ~ 21:30)
▪︎관람료: 무료(행궁: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
(화성어차: 어른 6,000원, 어린이 2,000/국궁체험: 10발 3,000원)
▪︎주차장: 홈페이지 참고, 대형차량은 연무대주차장 이용
▪︎문화관광해설사 有-홈페이지 참고

수원화성 소개

수원화성은 1794년(정조 18) 2월에 착공하여 1796년(정조 20)에 축성된 것으로, 성곽의 총 길이는 5.74km에 달한다. 아버지 장헌세자의 원(園)을 화산(華山-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으로 이장하고, 그 일대에 있던 수원도호부의 읍치를 지금의 팔달산 밑으로 옮기면서 만든 계획도시이다. 수원화성은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채제공의 총괄 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축조하였다. 특히 당시에 거중기와 녹로 등 신기술을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건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와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 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축조 이후 수차례의 자연재해와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었으나, 축성 당시에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내용을 철저하게 남겨 놓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 본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는 원본 그대로인 건축물만 등재가 가능했으나, 기록물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 이례적으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후 『화성성역의궤』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날에는 수원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여겨지고 있으며, 조선 성곽의 꽃으로 우리 곁에 우뚝 서 있다.


수원화성 관람안내도 (출처: 수원문화재단)

장안문~창룡문까지

화성의 입구, 장안문(長安門)

장안문 전경(출처: 수원문화재단)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으로, 정조의 행차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화성의 정문이다.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현륭(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성문을 대표하던 장안문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 다시 복원하였다.

*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항아리를 반쪽으로 자른 것 같이 둘러싼 성으로, 수원화성의 특징이다.
*적대: 적이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 화성에서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있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포루(砲樓):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좌)북서적대, (우)북동포루

아름다운 북쪽 수문, 화홍문(華虹門)

화홍문 전경

북수문(北水門)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라는 뜻의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힌다.


동북각루,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방화수류정 전경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용연)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정조는 이곳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용연(龍淵)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龍池大月)’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은 조선 후기 문화가 한껏 드러난 문화유산이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방화수류정과 용연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에서 바라본 성밖 모습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으며,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군사들의 훈련지, 동장대(東將臺)

연무대 전경(출처: 수원문화재단)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동장대 앞의 넓은 잔디밭은 조선시대 화성의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24가지 무예를 훈련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말을 타고 검쓰기, 창 쓰기, 활쏘기, 격구 등의 다양한 훈련을 했다.


연무대를 바라보며 그려본다. 무예 24기를 수련하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호위에 최선을 다했던 장용영 군사들의 건강한 몸짓과 활달한 기상을. 현재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매일 2회씩 진행되는 ‘무예 24기 시범공연’을 통해 역사적·예술적·체육적 가치가 높은 무형의 문화유산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창룡문에서 바라본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꼬불꼬불 미로 같은,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 전경

동북공심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동북공심돈은 3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출입문에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르는 구조다. 이 모습을 빗대서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 무너졌었는데 1976년에 복원해 모습을 되찾았다.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

화성의 동쪽 문, 창룡문(蒼龍門)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은 장안문에 비해 규모가 작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격을 낮춘 형태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이 2층 문루에 우진각 지붕인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문루에 팔작지붕이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은 한쪽 구석이 열려 있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 실명판이 있다. 한국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했다.


불빛과 연기로 알리는, 봉돈(烽墩)

봉돈 전경(출처: 수원문화재단)

화성의 봉돈은 봉화대와 군사 방어 시설인 돈대의 두 가지 역할로 나뉜다. 그래서 봉돈 밖으로 많은 총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벽돌로 만든 화성의 대표적인 벽돌 건축물이다. 높게 쌓은 대(臺) 위에 횃불 구멍인 화두(火竇)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화성의 남대문, 팔달문(八達門)

팔달문 전경(출처: 수원문화재단)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비슷하나 옹성의 크기가 장안문에 비해 약간 작은 것이 다르다.
팔달문은 축성 당시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사 감독과 석공의 이름을 새긴 실명판, 현판까지 원형이 잘 남아있다. 2013년 처음으로 문루 전체를 수리했는데 훼손된 목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였다. 부재에 남겨져 있는 전통 기술의 흔적까지 보존한 사례로 손꼽힌다.


팔달산 정상의 군사지휘소, 서장대(西將臺)

서장대와 서노대 전경(출처: 수원문화재단)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융릉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짓고 글씨를 쓴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 곳이다. 1971년에 복원되었으며, 2006년 방화로 2층 누각이 전소되었고 같은 해 수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노대(弩臺):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서노대는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팔각형의 몸체가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안정적인 형태로,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로 마감하였다.


화서문에서 장안문까지

화성의 서쪽 대문, 화서문(華西門)

어차에서 바라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이다.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판은 화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채제공이 썼으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화성행궁(華城行宮)-화성 안의 궁궐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이렇게 규모가 커진 것은 정조가 장차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와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하였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1801년(순조 1) 행궁 옆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75년 화성 복원 결정과 함께 행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6년 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다. 2016년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조사와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2023년 복원 사업을 완료하였다.

신풍루(新豊樓)-화성행궁의 정문
봉수당(奉壽堂)-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린 곳
낙남헌(洛南轩)-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
복내당(福內堂)-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던 건물
뒤뜰의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 벽화

나에게 수원화성은 ‘선재 업고 튀어’이다. 알콩달콩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던 용연 앞, 선재가 솔에게 고백한 화홍문 아래. 즐겁게 보던 드라마 화면 속 장소가 눈앞에 펼쳐지니 벅찼고, 역사적 의미까지 알게 되니 뿌듯했다. 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다니, 그곳을 지날 때 들리던 시원한 물줄기 소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 관리와 백성을 아끼는 그의 마음을 곳곳에서 보며 정조를 괜히 대왕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구나, 만 보 넘게 걸으면서 몸소 느낀 하루였다.


멋짐이 끝이 없는 정조대왕님,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뛰어난 과학기술과 아름다움을 220여 년이 지난 이 땅에서 당신의 후손들이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곳에서 백성을 위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하셨으나, 그 마음을 본받아 저도 꿈꿔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는 꿈을요.

어차 타고 장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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