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하는 세계에 남아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고개 내려 구경했다

by 인간실격

하루 뒤,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진 나는 염치없게 친구네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고 가족과의 대화를 단절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집이 싫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 안이 천천히 비워진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나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나에게 사과를 하고 계셨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나는 나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을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던 셈이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에 대한 고통을 전부 부정해 버린 셈이었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낼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내 안에서 느껴지는 그 질척한 감정들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타르와도 같이 끈적하고, 누린내가 진동하는 역겨운 감정. 내가 품는 감정들은 언제나 그러했다. 그의 희생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그가 피와 땀을 흘리며 벌어다 주었던 금전을 사치스럽게 사용하면서, 그가 하는 사과를 부정했다. 그것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나는 필통에 있는 작은 커터칼을 바라보았다. 저것으로 내 손등을 긋는다면 무언가가 달라질까? 내 몸에 가득한 이 질척한 감정을 덧씌울 수 있을까? 아버지의 사과를 무시한 후에는 두 시간을 작은 칼을 보며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일주일을 그렇게 냉전 상태에 들어가 있자,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사과가 계속해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에 짜증이 나셨는지, 나를 불러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의 나름대로 최선의 사과를 하고 있는데 어째서 계속 무시하냐의 원성을 듣고 내가 말했던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대답. 말 한마디 하는 순간에도 심장소리는 시끄러웠다. 짜증이 서렸었다.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뜯었었다. 짜증을 내서는 안 됐다. 나는 아버지가 버텨온 수많은 시간의 희생 위에 서있었다. 그러니까 짜증을 내서는 안 돼. 그렇게 스스로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고무공이 머리를 채우고, 목을 가득 메우는 감정을 진정시키라는 머릿속의 나 자신의 의견을 들으며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의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얼굴. 분명히 나와는 같지만 근본적으로 가면을 쓰며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는 것 같았던 그 얼굴에서 감정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얼굴을, 나는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바라보기에는 무서웠고, 감정을 드러낸 모습이 나에 대한 기쁨이나 자랑스러움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우울이었다.


아버지의 고성과 약간의 비아냥은 내 다리를 잡고 심해로 끌고 갔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내가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발로 천천히 밟고 있었던 내 세계는 점차 내 아래로 꺼져갔었다. 안돼, 그러지 마.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 내 모든 것. 내가 구축하고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던 내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러면 안돼, 제발 스스로에게서 빼앗지 마. 그 모든 것이 바다에 가라앉아 고래의 울음소리에 부서져가고 있었다.


나침반은 부서졌다. 죽도록 달리고 싶었던 다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손도 발도 눈도 이빨도 뼈도 내장도. 존재하고 있다고 굳게 의심치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느껴졌다. 이빨을 갈며 자기 자신의 나약함에 존중이란 개뿔도 없는 한탄을 보냈다. '앞에 있는 자에게 화를 내겠나?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시 그때처럼 집을 나가겠나?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그나마 유창하게 말할 수 있던 글로서 대화를 할 수도 없어. 그 얼빵한 얼굴을 들고 말을 해보지 그래? "나는 아빠가 싫어."라고.' 짜증 나게 비꼰다. 나와는 달리 손은 유달리 작았던 부정이 손을 들었다. 얄미운 어투로 내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이윽고, 긍정과 부정이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고성을 질러댔다.


분노는 황당함으로, 황당함은 곧 정해져 있지 않은 산문의 글처럼 어디론가 의미를 잃고 사라지고 말았다.


천천히 모든 것을 비운 나는 앞에 있던 잔을 보았다. 그곳에는 술이 보였다.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사과의 표시로 꺼내온 하이볼이었다. 상담을 신청했던 그날에도, 나는 소주 한 병을 꺼내 아버지에게 상담을 신청했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맨 정신으로 상담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겁을 먹었지만 아버지와의 상담은 해봤어야 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에게는 퍽 건방져 보였겠지. 손이 벌벌 떨렸다. 목이 타오르는 것처럼 메말라 갔다. 나는 그리고, 아버지를 불완전하게 긍정했다.


그래,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버지가 건네었던 하이볼을 전부 들이키고, 그것조차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후에 냉장고에 마시다 말았던 소주와 양주를 전부 들이켜서야 나 홀로의 한심한 술자리는 끝을 맺었다. (청소년 음주를 긍정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은 자랑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었으니 말이다.) 시원하고 씁쓸한 그 액체가 배를 채웠다.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 내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물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었다.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눈. 그리고, 자신을 의심치 않는 단단한 땅을 가진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의지. 그것들이 있는 한, 사람들은 완전하게, 안전하게, 세상을 살 수 있었다.


-나는 홀로 붕괴하는 세계에 남아 상여를 어깨에 지고 만가를 부르고 있었다. 상여 안에 들어있던 것은 이기적인 애도였다. 부서져 내린 나의 형체를 완전히 남기지 않을 망치와 그물이 그곳에 있었으며, 나는 그것을 천천히 내 등에 내려 박고 휘감으며 상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으니. 처음에는 희열을, 두 번째에는 축하를, 마지막에는 만가를 목이 터져라 불러 나 자신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부정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무엇의 특별함도 아닌, 부서지지 않는 세계이다. 누군가의 지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단한 세계가 구축되어 있어야 세상에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초석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고 애매한 아이답게,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스스로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쳐부순 후에 바다에 내던졌다.


세상을 만든다는 건 간단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였다. 철근을 빼먹지 않고 제대로 개수를 세고 공사를 한다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섣부름은 파멸. 안일함은 광대가 되어 웃으며 사람의 안에서 불을 지른다. 그러니 절대로, 길은 천천히 만들어 가는 것이 좋다.



이전 01화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