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피어나라/천재/말하게 해줘

-우리에게서 피어나는 것은 나락의 꽃이다./과대 망상증./괜찮지 않아.

by 인간실격

기분은 잘도 오락가락 하지 않습니까? 실로 멋대로인 것 또한 인간다워서, 우스움을 못 이기고 웃는 나날입니다. 오늘은 못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또 다시 존재를 지운 후에야 집에 돌아와서 다시금 눈을 감습니다. 그런 나날도 좋습니다. 만족을 느낍니다. 두 번 다시 느껴서는 안되는 안심의 이끼입니다.


저희는 그저 글을 좋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그 무엇도 필요 없었습니다. 허나 피어나는 것은 지독한 현실의 향기. 나락의 꽃이었습니다. 현실에 태어난 순간부터 뿌려진 씨앗에서 자라나던 그 악취는 어느샌가 몸을 잠식하고는 몸을 조종했습니다.


끝없이 피어나는 절망이요. 퇴락이자 쇠락이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눈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혀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은 분명 혀에서 자라난 가시일 것입니다. 입에서 느껴지는 찝찔함은 분명 입에서 난 병이겠지요. 그것을 없애려 따갑디 따가운 용액을 부었지만 역시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구려서 한 번은 코를 막고 물에 들어가 볼까도 생각해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부동, 불변에 가까운 무적입니다. 현실을 이길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당연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공평한 것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현실 자체는 모순적이지만, 그것조차 바꾸는 것이 인간인지라. 몇 년이 지난다면 나락의 꽃은 분명 아름답게 피어나겠지요. 독을 품고 있지만 보기에는 아름다운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오른쪽부터 왼쪽 끝까지 나열 된 사람들의 이름들이 보인다. 죽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보고 무슨 영감을 받으라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죽은 시체의 썩은 피를 몸에 집어넣는 것과도 같다. 저 고매한 이치를 얻는 과정을 사람들이 본다고 해도 이해를 할 수는 없겠지. 그렇기에 썩은 피를 몸에 수혈하는 것이다. 받는 순간부터 죽는다. 애초에 천재란 시체와도 같아서, 같은 시체가 아니라면 그 피는 몸에 맞지 않는다.


현대의 병이다.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이 가장 기대는 것은 모순이었다. 정작 죽은 인간들은 산 사람들이 미래라며 그 모습을 하늘에서 보고 싶었을 텐데. 하찮은 생각을 하던 나는 그만 벽 쪽에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자라나는 병을 몸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명예는 점차 만석이 되어간다. 현대인의 것들이 아닌, 천재들로 분류되었던 종들의 자리이다. 처음부터 싹수가 다른 인간은 그렇게 분류된다. 그렇기에 현대의 천재들은 결국 인형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비교 당하는 인생이라니. 오, 안타까워라.


아니, 질투다. 추악하디 추악하고 우매한 감정이다.


천재가 되는 순간부터 끝없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구별점을 만들지? 어떻게 그 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자신의 생각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러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이해를 포기하고 그저 천재라는 말로서 끝맺음을 짓는다. 불쌍한 것들. 박제 된 것들. 아련한 것들. 면구스럽게 감히 누가 누굴 동정한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벽 한 면에는 이름이 가득한 것들도 없다. 상장도 인정도 없는 주제에 다른 누군가는 천재라고 불리며 부담을 받는다.


아, 가족이여. 어째서 저를 천재로 만드시나요. 어째서 저를 믿으시며 어째서 제 태생을 천재라는 것으로 박제시키셨습니까?


청춘을 바칠 만큼의 인간이었습니까? 다른 가족과 함께할 만한 인간이었습니까?


나의 눈에는 그렇게 차올랐다. 다른 사람의 기대는 그저 몸에 가득차는 쓸데없는 고혈일 뿐이다. 빨리 지워내고 싶은 마음을 한 켠에 두고, 나는 또 다시 흘러내리는 실에 몸을 맡기며 떨리는 진동을 안정시켰다.


결국 나는 천재이고 싶은 우인일 뿐입니다.




학교에 몸을 맡길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죽고 싶다는 일념이었습니다. 어깻죽지가 간지러웠습니다. 어째서냐며 물으신다면, 저는 저를 잘 알고 있는 상식의 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말해주는 가족이 고마우면서 무서웠고, 그 말들이 가벼우면서 무거웠습니다. 기대를 걸지 않는 그 현실이 무겁기도 했고,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된 적도 있어서, 언젠가는 글을 그만두고 어련히 날아가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높은 곳은 무서워해서 그만뒀습니다. 삶의 의지도 생각도 없는 지금에서야 저는 시체와도 다름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진실된 말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는 지금 괜찮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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