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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Jun 15. 2024

영감이라 우기자

좋거나, 싫거나

긴 명상캠프를 마치던 날 우연히 글로벌 셀러브러티를 마주쳤다. 유명하니까 사진이라도 찍어 두어야겠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중얼거렸는데,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자고 먼저 말한다. 우물쭈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다시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마음을 숨기려 헛말을 했다. 그의 책은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한 학기만 강의하면 1년을 생활할 수 있다는 그가 부러웠던 것이다.  

    

명상캠프를 마무리하면서 어이없이 시기심으로 흔들리는 자신에게 그처럼 통찰하는 삶을 살라는 영감이라고 그 순간 우기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이 휘청거렸을지 모르겠다. 그는 또 한국에서 두 번째의 책을 출판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책이 팔린다는 유명세에 그가 하는 명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명상센터에는 대기 신청자가 줄을 선다. 그도 나와 같은 명상을 한다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친구들에게 플랙스 하는 내가 참 웃긴다.

      

우리는 쉽게 온라인상에서 특정 SNS 이용자들 간에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이 세상을 바꾼 변화 중의 하나이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을 향한 험담이나 비방과 폭로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 줄 수 있었고 어디에선가 필요로 하는 재능을 지닌 사람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댓글에 자존감을 상실한 유명인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만연한 사회현상의 병적 심각함이 피부에 와닿는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신체적 상해보다 심리적 손상을 누가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 까.

     

때때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과거 행적과 잘못, 실수들이 낱낱이 밝혀진다.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함과 중상모략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부도 가족 간에도 사회 구성원 사이에도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우고 화해할 수도 있다. 사실 사람은 살면서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을 할 수도 있지만, 요즈음 일부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사건들을 다 그들의 삶의 몫이라고 만 할 순 없다.

      

타인의 행복을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같이 기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방관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지적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남들의 능력을 열등감으로 질투와 시기로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며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관계 속에서 말로 다 표현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아서,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게 된다. 잘못에 대한 무심은 평정심을 지켜야 지혜로운 처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기로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지난 잘못을 파헤쳐 서가 아니라,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다.

     

치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일등만 살아남게 되는 구조적 모순 앞에 일등 아닌 대 다수의 사람들의 욕구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뒤틀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없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인간이 만든 제도가 완전할 수 없기 마련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의식의 고양과 마음의 정화, 감성지능 향상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가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감을 가지는 것도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추구하기 위한 장치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감을 갖는 것이 나쁘고 좋다고 하기 전에, 무엇을 전제로 하는 것인지 숙고할 필요는 있다. 삶의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존재의 가치와 보람을 찾고 싶어 한 번쯤 우쭐하는 기분에 빠진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력을 갖추고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앞에서 자격지심으로 열등감으로 초라해지고, 성공한 누군가가 부러워 시기하고 질투심을 느꼈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관계는 삭막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정서들은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정서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의 한 일면이다. 유투브의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하여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들에 대한 가짜뉴스와 사람들에 대한 능력과 성과에 대한 폄하를 접할 때, 유쾌하든 불쾌하든, 동요하거나 평정을 지키는 온전한 경험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만족하거나 불만을 가진다. 그러한 정서가 우리 곁에 있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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