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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Mar 17. 2024

추억의 도시, 뿌네

 인도로 간 히치하이커

유학 생활을 하며 살았던 뿌네는 전위 예술가인 홍신자의 수필집 ‘푸나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하여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잘 알려진 도시이다. 현재 인도의 경제 중심 도시인 뭄바이(munbai)를 영국인들이 봄베이(bombay)로 표기했듯, ‘poona’ 또한 영국 식민지 시대에 영국 사람들의 의해 ‘pune’가 발음하기 힘들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내가 ‘뿌네’에 막살던 무렵부터 원래의 발음으로 바꾸어 지명을 표기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또한 대전(大田)이 원래 태전(太田)이었으며 이처럼 일본의 식민의 잔재로 인하여 바뀐 지명들이 있어서 바로 잡고자 하는 일부의 노력들이 있다. 왜 ‘푸나’라고 하지 않고 굳이 ‘뿌네’라고 굳이 부르려 하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인도 또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1945년 보다 3년 후인 48년 8.15일 독립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광복절이 같다.

     

그즈음 한국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시작했고 잠시 한국 원화의 가치격상으로 여행의 경제적 부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나의 청춘은 어디에 라도 떠나고 싶었고, 당시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라즈니쉬(Rajneeshi)의 번역서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인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그의 아쉬람(ashram)이 있는 뿌네에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행의 인연은 따로 있다고 한다. 지구의 모든 명상기법을 한 곳에 모아 두었다는 그곳에서 어떠한 종류의 명상도 체험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십의 나이에도 학생비자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학생에게는 그의 아쉬람 출입을 금지했다. 관광비자의 여행자들에게만 에이즈 검사 이후에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다. 다시 시작한 학교 공부에 지칠 때면 숲이 울창한 아쉬람 주변의 빵집에 앉아 자줏빛의 로브를 입고 오가는 많은 서양인들의 분방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휴식을 하던 곳이다.

     

1931에 태어나 1990년 사망한 라즈니쉬는 철학교수였던 1960년대부터 그가 한 강의는 400권이 넘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30여 개의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라즈니쉬가 미국에서 돌아와 정착한 뿌네에 있는 아쉬람을 찾았고, 그의 책은 한국에서 번역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그의 책이 번역되었고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성 에너지를 깨달음의 에너지로 고양시키는 것은 힌두 딴뜨리즘의 한 수행법이다. 라즈니쉬는 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놓는 것이라는 현대적인 재해석을 내놓았고, 그 해석은 사회적 반향과 동시에 동서양의 수많은 젊은이를 추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대가 요구했던 해소의 역할을 그가 일부 담당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명상법들은 전수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뿌네는 인도의 전역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오는 교육도시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감출 수 없었던 나의 초라함은 언어 습득 능력이었던 것 같다. 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은 대개 태어난 곳에서 사용하는 토착어뿐만 아니라 힌디어와 더불어 영어를 할 줄 안다. 마음먹고 다른 외국어 하나쯤 습득하는 것은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언어 능력은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있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삶의 환경에 의한 소산으로 보인다.

    

뿌네에 살면서 만날 수 있었던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힌두교도 라고 내세우지만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앙은 그저 생래적으로 자신의 가계가 속하는 종파 안에서의 삶의 방식으로 보였다. 인도인들은 붓다마저 유지의 신, 비슈누의 9번째 화신으로 믿고 있듯이, 신에 대한 숭배는 수천 년에 걸쳐 각기 다른 지방의 민간신앙과 지역의 신들을 흡수하는 융합의 역사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인도의 수재들만 간다는 IIT(미국의 MIT 같은 인도의 공과대학)를 졸업했지만 유지와 파괴의 신, 뷔쉬뉴와 쉬바의 화신들을 모신 힌두템플을 방문하고 두 손 모아 복을 비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하는 포용력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신들의 전능에 대한 맹목적일 만큼의 믿음 앞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뿌네에는 풍요의 신, 가네쉬(Ganesh)를 모신 유명한 템플이 있다. 코끼리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가네쉬 조각상은 한쪽 귀만 금으로 되어 있다. 몇 년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소재로 에 등장하기도 했던 인도의 유명한 볼리우드(Bollywood) 배우 ‘아미따 바찬(Amitabh Bachan)’이 한 번은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당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한쪽 귀를 금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조건부 공양을 약속한 것이 그 이유였다. 이 템플의 가네쉬 신의 영험함으로 그가 당선되었다고 믿는 지역의 사람들이 아직도 끊임없이 찾고 있는 곳이다. 뿌네 시의 곳곳에는 이러한 여러 신들 중의 한 분을 모신 힌두템플들이 자리하고 있다.

     

뿌네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인도철학은 싼스끄리뜨어로 쓰인 경전들을 기반으로 확립된 학문이다. 인도인들이 인류의 최초의 언어라고 믿고 있는 싼스끄리뜨어를 배우게 되면서 바라문으로 음역 된 브람민(brahmin)들의 문화와 전통들을 접 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성직자들인 브람 민들의 후세들은 아직도 9세가 되면 아쉬람으로 가서 12년 동안 구루와 함께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는 전통이 지금도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기도 하다.      


정통적으로 싼스끄리뜨어 문법을 공부하고 암기했던 당시부터 살아있는 몇 분 되지 않는 노학자들로부터 싼스끄리뜨어와 빠알리어를 배우게 되면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살아 있는 인도의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었던 추억의 도시가 뿌네이다. 자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에 경구의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의미와 개념들을 아낌없이 전달해 주신 선생님들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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