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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Feb 15. 2024

인도로 간 히치하이커

인도로 간 히치하이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햇살의 따스함이 살갓을 간지럽히는 봄이 오면, 김포 공항에서 인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태어나 처음 하는 해외여행에 혹여 비행기를 잘못 타지 않을까 불안해했던 내가 떠오른다. 동물의 왕국에 나올법한 주머니가 잔뜩 달린 조끼를 입고 가죽 소재의 길들지 않아 불편하기만 했던 앵글 부츠를 신은 내 모습이 얼마나 어리숙했을까?


 그래도 그날의 공항의 냄새와 정갈하게 슈트를 입은 키가 컸던 한 서양 남자의 미소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나의 설렘과 불안했던 감정과 함께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나의 30대를, 그 꽃 같은 청춘을 인도에서 모두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강산이 변하도록 낯설고 물선 인도의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나의 이십대는 산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어디서 이렇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인지 늘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의 끝 모를 불안으로부터 얼마나 탈출하기를 갈망했는지 모른다. 왜 태어났는지.. 그것이 나의 의지인지?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때에는 주변에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도 없었고, 권유했던 사람도 없었을 때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내면의 신, 다이모니온 (daimonion)을 만났던 것일까? 어떤 정보도 누구의 권유도 없었음에도 신기하게 요가를 하면 그러한 마음의 동요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소리에 이끌렸다!


 하지 불안증으로 늘 다리에는 힘이 없었고, 소화불량으로 소화제를 달고 살았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먹은 음식들을 토하기 일쑤였던 서글픈 내 청춘이었지만 오히려 축복으로 느껴졌다. 요가를 수련하고 여행하는 삶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인도에서 요가를 수련하고 여행하면서 나의 건강은 차츰 에너지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마음은 안정되어 갔다. 차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며 사는지, 마음은 왜 상처를 받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였을까? 1년 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인도철학을 공부하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준비가 없는 도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학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무모한 도전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유명한 장수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무한도전”처럼 오기로 버티었다. 오히려 계획하고 준비한 유학생활이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그저 내일의 모험이 무엇일지 몰랐기에 담담히 그리고 담대하게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삶에 대한 온전한 대면은 어렵기만 했다. 내 안에 숨겨진 부조리한 내면세계가 완벽하게 들어났다. 나는 마더 테레사처럼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빌게이츠처럼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러나 실천과 행동이 없는 나의 이상은 일그러진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안에 모든 욕구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분출이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상충하는 욕망을 어쩌지 못해서 자신을 엉뚱한 곳으로 밀어붙이며 마음의 폭류에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나의 청춘이 인도에서 먼저 마주했던 것은 드높기만 한 내 이상과 한없이 부족한 나의 능력에 절망하면서도, 그 사이 열등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조차 차분히 알아차리고 지그시 지켜볼 수 있는 요가와 명상이라는 테크닉, 벅찬 그 삶의 기술이었다.


 인도 여행 1년 후, 나는 김포공항에 홀로 돌아왔다. 대학원 진학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앞에도 말했지만 태어나 처음 하는 해외여행에 두군거렸던 세 여자는 더 이상 함께가 아니었다. ‘헤어지고픈 친구가 있으면 인도여행을 함께 하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니, 그냥 그렇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나에게 남은 기억들은 당시를 구체적으로 전부 세세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만 남아있다. 기억은 바이러스처럼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숙주로 한다. 우리의 마음에 기생해 언제나 역동적인 활동을 한다. 사건에 대한 기억의 왜곡은 적절한 환경에서 변이되는 바이러스와 같다.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죽어버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헤어져 각각 다른 장소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지 어렴풋하기만 하다. 다만, 이제는 기억 속의 그녀들이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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