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이상 더 나아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더 나아졌던 게 아니라 원래의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두려운 일들을 극복해나갈 때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건 줄 알았는데 두려워하는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뭔가를 깨달을 때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된 건 줄 알았는데 무지한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미루던 일들을 해 나갈 때마다 성실한 사람이 된 건 줄 알았는데 할 일을 미루는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된 건 줄 알았는데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시련을 극복해나갈 때마다 강한 사람이 된 건 줄 알았는데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나를 제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모든 걸 두려워하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있었던 가치 판단이 가치 있는 나와 가치 없는 나로의 분열을 일으켰고, 한 그루의 나는 밑동만 남은 뿌리와 기둥 없는 나뭇가지로 분리되어 댕강 잘려나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걸 두려워하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나에게 뿌리를 내리고 높은 곳을 향해 아주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다.
나의 가치는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꽃과 열매가 아닌 뿌리에 있다. 그동안은 하늘만큼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는 땅만큼 사랑하는 법을 배워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