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우울이 품고 있는 가장 가혹한 그림자는 바로 '자살'이다. 사람들은 간혹 묻는다. "우울증 치료하면 낫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아니다. 우울은 그리 쉽게 낫는 병이 아니며, 게다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울증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환자가 몇 달 지나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어쩌면 바로 이런 잔인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나 또한 나만의 'D-DAY'를 정해두곤 했다. 나의 생일 날짜로 말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죽을 날을 마땅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은밀한 시도는, 사전에 D-DAY를 발견한 친구 덕분에 다행히 무산되었다. 어쩌면, 간절히 누군가가 나의 신호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 수도 없이 고쳐 썼던 유서들이 기억난다. 서투른 필체로 주절주절 마음을 쏟아내다 결국 구겨진 채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던 수많은 활자들.
밝은 새벽달이 서서히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쉽사리 잠 못 드는 이들이 있다. 바로 '불면증'이라는 밤의 동반자를 겪는 이들이다. 그들은 몸은 천근만근 피로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기이한 상태에 놓이며, 간절히 잠을 호소하면서도 손에 쥔 휴대폰을 좀처럼 놓지 못한다.
우울의 그림자에 갇힌 이들은, 마치 자신의 몸집만 한 거대한 사과 속에서 움츠러든 작은 애벌레와 같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에도 쉽게 움츠러들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곤 한다.
내가 바로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오늘 새벽에도 우울은 나를 집어삼켰다가, 이내 다시 뱉어냈다. 그러나 한번 집어삼켜진 감정은,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법. 한동안 나는 그 우울의 끈질긴 추격에 시달려야만 했다. 오늘은 등교하는 날이었지만, 나는 차마 교복을 입을 수도, 아니, 바라볼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우울의 탓이라고, 나는 애써 말하고 싶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으니, 문득 아른거리는 부모님의 얼굴. 하지만 우울이 이미 나를 삼킨 이상, 무기력함이 내 온몸을 지배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혐오'.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받게 되면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 감정은, 좀처럼 통제하기 쉽지 않아. 가끔은 필터 없이 내 뇌를 빠져나가 주변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우울이 감기라면, 그것은 지독하고 끈질긴 여름감기일 것이다. 남들은 좀처럼 걸리지 않는 이 희귀한 감기에 운 나쁘게 걸린 나처럼. 우울이라는 감기는 그만큼 지독해서 쉽사리 낫지 않는다. 혹여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이 '우울 감기'를 앓고 있다면, 부디 그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충고이자 간곡한 부탁이다. 그 사람은 아마도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깊이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를 홀로 두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감히 장담할 수 없다.
우울이 시작되면, 인간 본연의 '욕망'이라는 불꽃은 점차 사그라든다. 욕망보다는, 오직 깊은 절망감만이 커다랗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불안해하지 말길 바란다. 생각보다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설령 별것이라 한들 어떤가. 우리는 기꺼이 그 벽에 부딪혀 볼 준비를 해야 한다. 이리도 저리도 못하며 속이 말도 안 될 만큼 엉키고 설켜, 도무지 풀어낼 수 없는 매듭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위로의 작은 숨결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괜찮지 않은 걸 알지만, 굳이 신경 써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