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얼어붙은 물방울, 나이아가라의 소리
우리는 레인보우 브리지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다리 쪽으로 걸었다. 목표는 미국 쪽이 아닌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 살을 애는 추위에 맨손으로 손잡이를 잡는 건 무리라 장갑을 꼈다. 바람은 차가웠고, 캐리어의 바퀴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레인보우 브리지는 미국과 캐나다를 다리 하나로 잇는다. 우리는 미국 쪽 감상은 과감히 접고 캐나다 쪽을 택했다. 풍경이 더 탁 트여 있고, 무엇보다 추위와 체력 앞에서 ‘빨리 넘어가자’는 마음이 컸다. 다리 초입에서 강 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캐나다를 만나러 걸었다.
브리지를 건너는 길에서 폭포는 점점 가까워졌다.
원래라면 5분, 길어야 10분이면 건널 다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멈췄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잠깐씩 숨을 고르고. 그러다 보니 20분이 흘렀다. 어느 순간 “더는 못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손끝과 귓바퀴가 먼저 아파왔다. 우리는 마지막 구간을 거의 뛰다시피 건넜다.
국경 심사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건지, 캐나다에는 며칠 있을 건지, 학생인지, 누구와 왔는지. “하루 머무는데 짐이 왜 이렇게 많아 보이냐”는 질문도 받았다. 우리는 하나씩 답을 하고 무사히 캐나다로 들어왔다. 그때쯤엔 온몸이 으슬으슬했고, 감기 기운이 목 뒤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상태로, 내가 고심 끝에 예약한 폭포 뷰 호텔에 체크인했다. 늦게 도착해 층수가 낮았고, ‘뷰’가 기대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무엇보다 따뜻한 실내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우리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잠깐 누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 더 처지면 끝이다. 빨리 오늘 할 걸 하고, 돌아와 쉬자.
30분 만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폭포까지는 내려가야 했다. 트롤리를 타면 직선으로 내려갈 수 있고, 아니면 차도를 따라 빙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체력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매표소에서 왕복 티켓을 사고 트롤리에 올라탔다.
트롤리에서 내리자 발걸음이 저절로 폭포 쪽으로 끌렸다. 그리고 마침내, 나이아가라가 눈앞에 펼쳐졌다.
소리가 먼저였다.
영화에서 듣던 폭포 소리—그보다 더 깊고, 더 거칠고, 더 큰 소리. 물이 위쪽에서부터 밀려 내려와 “포오오오—” 하고 빨려 들어가듯 떨어졌다. 눈으로는 웅장함이 보였고, 소리로는 소름이 느껴졌다. 나는 11월에 가을의 나이아가라를 본 적이 있었지만, 완전히 겨울이 된 폭포는 다른 존재였다. 두 번 올 만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동생도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동생의 “와…”를 들으며 더 기뻤다.
주변은 얼어붙어 있었다.
난간도, 가까운 식물도, 가로등도. 고드름이 달린 가로등을 지나며 우리는 폭포를 따라 걸었다. 폭포 가까이 갈수록 더 놀라운 일이 생겼다. 강한 물살이 튀어 올린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얼굴과 옷에 닿았다. 보이지 않는 얼음 알갱이들이 살갗을 툭툭 건드렸다. 우리는 눈만 내놓고 무장한 채, 그 차가움까지 ‘경험’처럼 받아들였다.
사진과 영상은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장갑은 엄지와 검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는 형태였고, 나는 그 작은 틈으로 지문을 드러내며 셔터를 눌렀다. 서로를 찍어 주고, 함께 찍고, 다시 찍고. 너무 추운데도 자꾸 찍었다. 우스운 노력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동생과 장난치고 수다 떨며, 초등학생처럼 떠들었다. 추위가 우리를 더 붙여 놓는 느낌도 있었다.
몸이 한계에 닿을 즈음, 우리는 실내 공간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끼니를 해결했다.
햄버거와 초밥롤로 간단히 먹고, 관광샵을 둘러봤다. 캐나다 메이플 비스킷도 하나 사 먹었다. 동생은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라며 사 가자고 했지만, 우리는 이미 캐리어에 여유가 없었다. 깨질까 봐 걱정도 됐다. 그때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정말 좋아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그 비스킷은 다음 날, 우리가 거의 다 먹어버렸다.)
우리는 배지와 자석을 구경하고, 무지개색 모자도 써 보며 몸을 녹였다. 그러다 다시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다시 들어와 녹이고, 또 나가서 바라보고. 지금 생각하면 “사진을 위해 추위를 오가는” 그 반복이 웃기기도 하다.
해가 지기 직전부터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는 그 시간을 끝까지 붙잡았다.
폭포를 향한 조명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빛이 달라질 때마다 폭포의 표정도 달라졌다. 화려함이 거대함을 더 거대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밤이 되어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펍 같은 곳에 들러, 쿠폰으로 음료와 감자칩을 주문했다. 한 입 마시고 한 입 씹으며, 오늘 본 풍경을 다시 꺼내어 씹는 기분이었다. 하늘도 아름다웠고, 눈에 담긴 장면들은 잊지 못할 만큼 선명했다.
춥고, 벅차고, 고마운 하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동생과 함께라서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