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자신의 주관
살다 보면 별 이상한 사람들과 보통의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가장 곤란한 만남은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들을 만났을 때이다.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왜냐 일적으로, 공적으로 만난 관계로-이유로 악연을 이어나가야 될 때 왜 하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지 외치고 싶기도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늘 주머니에,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사표’가 아닌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왔던 인간관계에 대한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르다. 스무 살의 얼굴로 열 살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마흔의 얼굴로 여든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일흔의 얼굴로 아직도 유아독존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우리의 지혜는 어떤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활로로 인도해 줄 것인가?
철학은 철학자의 것만은 아니다. 칸트나 소크라테스, 플라톤, 에픽테토스, 니체, 루소 등 이름이 어려운 그런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의 사상이나 주장들을 만일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고 알아보는 것 정도는 좋겠지만 솔직히 대부분 머리가 아프다. 이미 누군가 정해놓은 철학을 힘들게 따라갈 필요는 없다. 좋은 것은 취하여 쓰고 나만의 필요에 따른 새로운 철학을 만들면 된다.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황제이자, 명상록 저자) 역시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몹시 힘든 사람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조금만 더’라고 말하던 그가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왜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라도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철학이 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한 어떤 사소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자신만의 철학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은 말한다.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아침에 눈을 떠 직장으로 향하고 일한 뒤 집으로 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 늘 고비가 도사리고 있다. 그 고비를 어떻게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 매번 반복되는 문제 속에서 어떻게 일관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지, 어쩌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 능력,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철학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연 없는 무덤 없듯이 우리네 세상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할 만큼의 고난과 전쟁, 불공평함, 불공정, 부끄러움, 죄의식, 소유의 문제, 인식의 문제, 갑질, 폭력 등이 넘쳐난다. 이것만 놓고 봐도 우리가 철학자가 못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다만, 딱 하나 걸림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정보와 지식, 사건, 지혜가 공유된 시대가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 탓인지 오히려 정작 자신에게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미 자신이 해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현대 시대에서는 너무나 많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혼재된 세상이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쩌면 신탁이 옳을지 모른다고, 소크라테스는 결론 내렸다. 어쩌면 정말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지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지녔는지도 몰랐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나 역시 아침마다 침대와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 중 하나다. 그냥 일어나야만 하니까. 일도 해야 하고 밥도 차려야만 하고 다들 각자의 자리로 챙겨서 보내줘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궁극적인, 납득할만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든 안 했든 확실히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삶에 지혜를 주고 그것이 인생의 고비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철학이 되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