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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Oct 07. 2023

인내심과 부모

자녀를 키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네요.

기나긴 연휴가 드디어 끝났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시간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분명 자녀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 예전에는 조금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코시국 동안에도 느낀 것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 그것이 자녀라고 할지라도 항상 붙어있는 것이 모두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번 긴 연휴도 그랬다.


직장생활에서도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그래도 대충 참고 눈치껏 맞춰주며 사회생활을 한다. 그런데 집에서 정작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그것이 잘 안 된다. 자녀를 좀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럴 수도 있고 자녀가 자신보다 약자로 인식되어 자기 절제가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녀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중 가장 최고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사실, 내 마음대로 되어서도 안된다.)


자녀는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어쩌면 그렇게 잘 아는지 본능적으로 그 부분을 공략한다. 나는 자녀를 통해 숨겨져 있던 나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온대 간데없고 정말 최악의 내 모습을 마주한 채 스스로에게 실망을 느끼곤 한다. 자주 그런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지만 자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 줘야 하는데 나는 늘 인내심이 부족하다.


혼자 살 때의 나의 모습과 결혼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같이 양육하면서 사는 나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스스로 인식하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자녀와 같이 살아가면서 표면적으로는 내가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자녀 역시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참고 기다릴 때만 가끔씩 온다. 그렇기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낀다는 것은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3대 난제 중 하나인 육아문제(나머지 2개는 모르겠다.)는 특히 인내심이 없으면 그것이 주는 가르침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오히려 인내심을 보일 수 없게 될 때마다 나는 모든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자녀에게, 나에게 더욱 조급해져 거칠게 반응하게 되고 자녀는 반드시 나에게 더욱 큰 시련을 안겨준다.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화를 내게 될 때 자녀는 두려움으로 그 자리에서는 순응하는 듯 하지만 마음에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린 자녀일수록 통제하려는 마음이 크다. 자녀의 안전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부모니까 자녀의 행복을 위해, 또는 자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어리석은 실수들을 자녀는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성장하는 삶은 없다. 세상에 부모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는 듯 보인다. 알면서도 꾸역꾸역 자녀에게 자신의 행복을 강요한다. 


부모는 때로 자녀에 대해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녀에 대해서 늘 조급해지고 불안해한다.(내가 그렇다.) 그래서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을, 어쩌면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을 건너뛰고 나의 자녀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인내심이 점점 없어지는 부모는 시야가 점점 좁아지게 된다. 자기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하지만 다시 인내심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오면 모든 상황에 대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절망을 하게 된다.



인재심이 부족해지면 우리는 지금 현실을 쉽게 응결시켜 버린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렇게 계속될 거야', '나는 영원히 이 일을 하겠지', '평생 기저귀를 갈아야 할 거야'. 크든 작든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세상이 그 불편한 상황으로 좁혀지기 쉽고 우리는 이 불편한 상황이 과연 끝이나 날까 절망에 빠지기 쉽다. 모든 것이 항상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 편안하게 인내할 수 있다.

<PATIENCE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버텨라/M.J 라이언>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이 바로 인내심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할 때 나 정도면 잘 참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자녀는 나의 착각을 바로 깨 주는 존재이다. 나는 조급한 편이었고 완벽주의자였으며(전혀 완벽과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상황과 사람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녀에 대해서는 전혀 달랐다. 아마도 내 안에 그런 모습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긴 연휴는 끝났고 자녀는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조금은 생겼고 여유를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이 생에서 자녀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뭔가가 달라지고 인내심을 요하는 일들도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아 보이는 긴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갈 것이란 것도 그렇지 않다 해도 우리 모두 행복해 지리라는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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