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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Oct 14. 2023

누군가의 부모, 자녀

우리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에요.

내 자녀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것을 믿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 환상을 실현시키고자 참으로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바보이기도 하다. 그런 부모에게 '장애'라는 수식어를 달고 태어난 자녀가, 혹은 갑자기 자녀에게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생겼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장애에 대해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과는 거리가 먼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냥 외면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나도 그랬다. 내 생활 반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애'가 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늘 남의 일이기만 했던 일이 자신의 일로 다가올 것이라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것처럼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인 것이다. ( 이렇게 이야기하면 꼭 화내시는 분들이 계신다. 화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라.)


예전에 자주 가던 시장에 상점 주인이 큰 소리로 이야기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구청 공무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상점 앞 길에 턱을 없애고 장애인이 잘 다닐 수 있도록 공사하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때 그 사장님은 장애인이 몇 명이나 이용한다고 그러냐며 보통 사람들은 잘 다니고 있는 멀쩡한 길에 자신이 낸 세금을 낭비한다고 공무원에게 역정을 내시고 있었다. 그때는 그들의 대화가 나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난 그 대화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그 사장님이 아셨다면 그날의 자신의 발언을 나처럼 부끄러워하셨을까?


태어날 때 장애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자신이 장애를 가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도 없다. 장애는 그냥 그런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조상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데도 장애에 대해 원인과 잘못을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어째서 장애가 '잘못'이나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의 인생이 그런 '계산'으로 가늠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모여 장애에 대한 '혐오'를 불러오는 것이 아닐까?


장애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부모는 대부분 자녀를 사랑한다. 자녀를 계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이 겪었던 실수와 잘못들로 인한 아픔을 자녀는 겪지 않길 바란다. 부모는 말 그대로 꽃길만 걷게 해 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마음은 장애아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녀를 지켜주고 싶다. 꽃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이 평범하게 누리는 그런 권리를,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살길 바랄 뿐이다. 그것을 손해라거나 장애를 가진 자녀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세상에는 무수한 자녀들이 살고 있다. 나도 우리 부모의 자녀이고 다른 누군가도 자녀이고 또 부모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의 소망이고 기둥이고 하늘이고 땅이다. 세상에서 내 자녀만 꽃길을 걸을 수 없듯이 내 자녀만 잘 살 수는 없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여야만 내 자녀도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내 자녀가 이쁠수록 남의 자녀 역시 이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애아의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은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고 자녀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만 아프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이라는 것은 없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 없고, 불행하지 않은 사람 없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 없다. 


다만, 우리는 위에 이야기했던 사장님처럼 서로를 잘 모를 수 있다. 멀리 떨어져서, 숨어 있어서는 서로를 알 수가 없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들인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 친한 친구만이 자신의 친구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다. 서로의 단점을 인내해 주고 배려해 줄 수 있다. 정말 정말 서로 소통이 어려운 장애일지라도 그 친구가 가까이 있다면 그 장애를 가진 친구가 얼마나 용기 있게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권리들이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편견과 혐오를 쌓아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누구나 존재의 이유는 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장애인을 봤다고, 불편하다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았다고 눈살을 찌푸리고 비난하지 마셨으면 한다.  장애를 가진 자녀 역시 이 사회에서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성에 일조하는 일원으로서 같이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부모의 어리석은 환상이 실현될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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