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jebell Oct 31. 2023

실패 후의 삶

어쩌면 더 자유로운 

우리는 이 세상에 어느 날 태어났다. 물론, 신을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신의 심오한 계획에 따른 탄생으로 볼 수도 있고 인간의 종족 번식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탄생에 알 수 없는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우리는 사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삶 속에 우리가 속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매일매일 비슷한 삶 속에  '나는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한 번쯤을 해보았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이란 것이 무엇으로 나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 불리는 운명 속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얻기 위해,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고 운명의 장난에 휩쓸리기도 하며 운명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명을 믿지 않았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바로 앞의 시간 만이 나에게 현실의 삶이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모두가 그렇듯 나의 성공을 꿈꿨다. 나에겐 어느 날 낡은 레코드에서 흐르던 음악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음악 말고는 나에겐 그 어떤 목표도 없었고 다른 꿈을 꾸어본 적도 없었다. 음악은 나의 전부라고 믿었다. 당연히 나의 앞날도 음악과 함께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어떤 삶이 되었든 음악은 내 생활과 함께였다. 


그 꿈이 깨어진 날이 나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왔다. 늘 칭찬받았던 재능은 갑자기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졌고 음악은 더 이상 나의 성공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실패자라는 끔찍한 느낌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내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음악이 왜 더 이상 내 꿈이 될 수 없는지, 내 목표가 될 수 없는지, 내 삶이 될 수 없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렸던 그 시절 나는 목표를 잃었고 꿈을 잃었고 삶의 의미를 잃었다. 삶에서 처음 배운 상실의 아픔은 너무도 컸다. 운명을 믿지 않던 나는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의 장난이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극히 적은 시야로 바라본 내 삶은 실패가 맞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삶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삶은 지속되고 시간은 흐르며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삶에 이끌려 살아갔다.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운명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해 줬다.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운명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빅터 프랭클>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아니 운명에 실패했으니 나는 나 자신을 바꿔야만 했다. 어리석고 이제까지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의미를 두지 않은 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렇다고 현재의 막연한 삶에 끌려가며 깊은 의미 부여 또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또다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막상 태어난 김에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운명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행복하고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 또다시 원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삶은 내가 죽더라도 계속된다. 내가 태어남으로 삶에 끼어든 것처럼 어느 날 내가 삶에서 퇴장하게 되더라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삶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현재 나는 음악을 하지 못한다고 죽을 것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있다. 그 뒤의 삶도 고난의 연속이고 좌충우돌하는 삶이었지만 어찌 되었던 내가 생각했던 실패 후의 삶 역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의 방향 전환이었다. 다른 전공을 선택했고 맞지 않았지만 견뎌냈고 또다시 전공과 상관없는 직장에 들어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짐을 견디며 지혜를 얻었다.(그렇게 정신승리했다.) 알바도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았고 그렇게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 것 같은 내 삶에 결혼도 생기고 그리고 발달장애아의 부모라는 이름도 생겼다. 


지금 그때의 실패 후의 삶에 대해서 누군가 묻는다면 실패이든, 성공이든 그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무엇에든 지나친 집착은 불행을 느끼게 한다. 어찌어찌 이제껏 삶이 나를 추방하지 않음으로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음악을 하지 못했다고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삶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을 얻었다면 좀 더 다른 삶이 펼쳐졌겠지만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버린 나는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내 행복의 지도를 그려가려고 한다. 물론, 불행할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한 삶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믿는다. 


실패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쩌면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괴로움의 시간을 흐르고 흘러서 내가 모르던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도 있다. 나는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을 위해 주어진 위치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실패 후의 삶 역시 그렇게 흐를 뿐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직과 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