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하며 존재해야 한다.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도덕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도덕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은 고리타분하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그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롱할 때 도덕이란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 도덕이란 단어는 위선과 더 가까워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어떻게 비슷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까.
특권을 가진 지배계급이 자신이 가진 특권에 대해 그렇지 않은 피지배계급에게 변명하기 위해 도덕을 가져다 방패로 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가진 특권이 마치 그들이 노력해서 얻어진 것인 마냥 평등한 정의로 포장하려는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미 어느 정도 이 사회에서는 그들의 변명이 통한 것 같다. 이 사회는 온통 특권에 대한 부러움과 그럴 수 있는 능력도 능력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올바르다고 배웠던 어렸을 적의 도덕이란 개념은 솔직히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기는 한다. 나의 무능력과 뒤떨어진 시대의 개념은 그들, 특권을 동경하거나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될 뿐인 생각이다. 현재 이 사회는 지나친 능력주의에 빠져 개인의 불행한 상황들과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에서는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돌려 자신들의 욕망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다가도 살면서 언제 가는 분명 자신이 눈 돌렸던 바로 불합리한 지점이 자신에게 도착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의 주변에는 자신이 동경했던 특권을 지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을지,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간주하고 경멸했던 사람들이 남아있을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치들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사람마다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우선순위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가치의 목록의 내용은 같은 것이다. 때로 인간은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고 배려하고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의 도덕심은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선한 마음이 아직도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도덕이 어떤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런 전통이라고 불리는 개인에게 폭력적인 그런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죄의식을 건드리고 의무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도덕이 아닌 정말 인간으로서 꼭 지켜야 하는, 예를 들어 약한 자들을 돕고 정직하게 일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등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가치들도 있다.
좋은 도덕이란 말 자체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진짜 좋은 점은 모든 것이 나 자신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모든 도덕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 도덕의 가치는 특권을 변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식하게 해 주는 것에 있다. 나라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기준이 되어준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도덕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덕적 인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도덕적 인간이라면 자신이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시간이라 해도, 아무리 예외적인 경우라 해도, 인간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아무 죄책감 없이 다른 인간들에게 어떠한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게 된다."
<부활/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