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jebell May 13. 2024

가까운 관계

불편하고도 잘 모르겠는 관계

사실 가장 어려운 관계는 한 다리 건너의 관계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관계일 수 있다. 보기 싫다고 쉽게 인연을 끊을 수도 없고 싸우고 미워도 바로 얼굴을 보고 생활해야만 하는 고약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냥 사소한 일로 다투고 다시 얼굴을 보고 화해하고 그런 반복되는 상황들을 지나 서로의 묵인 속에 얼추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적당한 거리라고 생각했던 그 거리 사이에 감정의 찌꺼기들이 계속 쌓여 자신도 모르게 견고하고도 두꺼운 벽이 생기게 된다.


그 벽은 가까운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오해하게 만들 만큼의 두께를 지니고 있다. 어느 날 전혀 눈군지 모르겠는 낯선, 타인 같은 사람이 벽 저너머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가 편하게 여겨질 만큼의 거리를 늘 유지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거리는 이제 좁히기 어려운 거리가 되어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벽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한 무언가가 되어주는 동시에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 준다.


벽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해 주고 그 순간 사실은 현재의 낯선 모습이 서로의 진실된 모습임을 어렴풋하게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이것은 무서운 순간이기도 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부인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왔기에 인간성에 대해서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었다. 그들의 성격적 특성이나 과거의 배경을 완벽히 알지 못했지만 대화 속에서 그런 부분들을 잡아내어 어떻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인생경험이 전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알지 못했다. 단절과 고립의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일상의 부딪침 속에서 서로를 잘 대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정작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의 기술들과 이해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적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신의 관계만은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이더라도, 혹은 먼 관계이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데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태도이며, 예의, 존중, 말투 등이다.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들을 소홀히 함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피로 연결이 되었든, 아니든 모든 관계에 있어 적용이 된다. 


요즘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든, 사회적으로 맺어진 관계이든 그 관계들로 인해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며 혼자이고 싶어 한다. 관계자체를 어려워하다 보니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미리부터 지쳐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물건이든, 사람이든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에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관계는 그 끈이 느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가 그 약점을 쥐고 상처를 줄지, 보듬어 줄지는 상대의 선택이다. 


혼자는 편하다. 누군가를 돌보고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색하고 자신만의 내적 평화에 힘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다른 모든 힘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와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쏟았음에도 상처받고 결국 포기하게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상처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가까운 관계는 좋기만 한 관계는 아니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불행한 느낌이 돌아가면서 찾아온다. 그래서 후회하기도 한다. 왜 이 관계를 선택했을까? 어쩌면 조금은 가까운 관계 속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냥 여기서 생각이 멈춘다면 내발등을 내가 찍었다는 후회만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 부모이든, 배우자이든, 자녀이든, 친구이든 진정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 다른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 자신과 가까운 관계가 된 사람들은 어떤 부분으로 인해 이런 관계가 된 것일까?


이제야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과의 얇고 두꺼운 벽들을 둘러치면서 편안하게 살고자 했으나 결국 그 누구 하고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불편하기 짝이 없고 불안하며 때로는 미워죽겠는 가까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점 많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가고 있다. 


여전히 상처받을 것에 대한 걱정이 먼저이고 위험한 일을 시도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이 삶에 노력하지 않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신뢰할 때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