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일뿐
너와 내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 판명되면 급격히 관계가 가까워지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갑자기 세상에 죽마고우를 만난 듯이 굴어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자신들의 친목을 다지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자기들끼리 잘 지낸다면 딱히 불만은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좋게 바라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비슷한 취향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곤 한다.
비슷한 취향을 계기로 사람들은 얼마든지 친해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사회생활에서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고 우연히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반갑기 마련인 것이다. 힘든 사회생활에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행동이 지나치게 되면 주변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단지 비슷한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다.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의 것에 소비를 주로 하느냐는 비슷한 환경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같이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더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같은 브랜드의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패션취향뿐만 아니라 옷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소득 역시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어울리기 원하는 사람들의 그룹에 들어가고 인정받고 싶은 나머지 취향이 맞지 않음에도 맞는 척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회생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취향이 잘 맞는다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느 한 편의 어느 정도 양보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은 온전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사람마다 그렇게 다 다른데 취향이 그리 단순하게 잘 맞을 리가 없다.
사람들이 100명이 모이면 100명의 각기 다른 색을 지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는 데 있어서 충돌하고 마찰과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위적으로 이 부분을 줄이려고 하고 어떤 편인가에 속하기 위해 애쓰는 개인들이 비슷한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의 연구처럼 취향은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사회적 계급이나 빈부의 차이 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가난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이 그쪽으로 흐르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취향으로 인해 나를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불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취향까지 강요하게 되는 경우는 사적인 부분을 침범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게 된다. 그저 사회생활을 통해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물론 자아실현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노력하고 있을 따름인데 왜 사적인 영역까지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지 끔찍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좋아하는 마음이 가는 취향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여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정말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제발 이런 부분까지 다른 사람의 잔소리와 지시를 받고 싶지 않다. 인기 그룹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자신들과 다른 취향이라고 해서 깔보거나 무시당하는 것은 너무 무례한 일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오히려 얼마나 교양 없고 품위가 없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과 같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취향이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