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비약이 일어나요
사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기분과 감정은 대단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분이나 감정을 잘 감추고 업무모드(혹은 이성적인 태도)로 전환해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의 몸 어디에선가 비집고 나와 그 기분을 조금씩 흘리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누군가는 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 또한 저편 어딘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태도 속에서도 부정적인 아우라는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를 거스르는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화가 난 상사나 주변 사람들 앞에서도 별로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분명 일이 잘되지 않고 있는데도 초조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막히는 차량 속에 갇혀 있을 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서 쉽사리 휩쓸려 버리는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종종 화가 나거나 실망, 혹은 좌절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게 되면 사실상 생활의 전반에 있어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때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분노에 빠지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인해 감정과 논리에 비약이 일어나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큰지는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부추기게 만드는 것은 질투나 시기, 절망감, 좌절, 두려움, 걱정의 감정들이다.
대부분이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걱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멈추기 어려운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의 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을 끊어내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것을 위한 노력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기에게 거짓으로 세뇌하는 것이 전부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참으로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어서 애써서 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집요하리만치 포기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버리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부정적인 감정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놔두고 더 집중해야 할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다. 그것은 긍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언제 적이었던가 사랑에 빠졌었던 시절 커플은 서로에게 있어 좋은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때의 특징은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불안하거나 걱정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오로지 서로의 사랑에 대해서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그저 그렇게 중요치 않게 여겨진다.
자신을 두렵고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과 생각도 이와 같이 뒤로 미룰 수 있어야 한다. 내 걱정으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만큼 화내고 있는 상사나 불편한 관계의 동료, 혼잡한 도로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 주변 지인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증폭되어 감정의 파국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바라는 모습을 그가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의 책임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원하지 않는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이유는 없다.
불행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정말 어쩌면 남들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그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이외의 외부 변화에 긍정적인 감정이 의지된다면 나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냥 부정적인 감정은 내버려 두고 (언젠가 나 자신의 능력이 커진다면 그 부분 역시 해소가 될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은 내 능력 안에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의 노력을 덧붙일 수 있다면 스스로를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좋아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된다면 조금은 삶이 나아지고 있음을 문득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맞아. 당신은 자주 명랑과 우울 사이를 오가곤 하지, 혹시 단순히 위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당신은 왕성한 식욕으로 삶을 맛보았지. 하지만, 우우? 어디, 어디? 당신의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너무 긴 ㄴ밤들로부터? 외로웠던 유년 시절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으로부터?"
"삶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걸. 즐겁게 삶이 싹트는 그 순간부터! 그레 바로 삶의 역설이지. 우리는 탄생과 죽음을 분리한 수 없어. 마찬가지로, 문제 제기 없는 긍정, 의심 없는 신뢰, 비판 없는 동의란 존재하지 않아!"
<존재와 세계를 긍정한 철학자 리쾨르 편/올리비에 아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