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사람보다는 괜찮은 거겠죠....?
혼자만 잘나서는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 오히려 버티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되도록 비슷하게 일하여야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습니다.(그래도 뒷말이 나오는 것이 직장이지만) 하지만 업무에 따라서 공평하게 일해야 한다는 부분은 매우 필요하고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는 직원은 더 많은 일, 혹은 더 높은 강도의 일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직원일 경우 그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경우가 발생하였을 때 그에 알맞은 보상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이 유독 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이른바 착한 사람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착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원래 업무 외 적인 일들(주로 잡일일 경우가 높습니다.)이 끊이지 않습니다. 다른 직원에게 거절당할 만한 일이란 것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문들은 어찌나 금방 퍼지는지 사람들은 다들 누울 자리를 보고 마음껏 다리를 뻗습니다.
직장에서 개인플레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구나 업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의 사업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업무지체는 다른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참을성 없는 누군가가 착한 사람이 껴안고 있는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 주게 됩니다. 혹은 모두가 인내심이 대단한 경우라면 결국 착한 사람의 업무가 넘어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업무 기한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상사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과연 모르고 있을까요? 아마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회사에, 혹은 자신에게 나쁠 것 없다고(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그냥 놔두고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조직에서든지 발생하고 있는 비효율적이면서도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적인 업무들은 누군가가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면 이러한 자잘한 부분에 있어서까지 업무 매뉴얼과 보상시스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보상 없이 그냥 인간적인 마음에 기대어 비합리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눈감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직장 상사나 오너의 입장에서 착한 사람이 직원일 경우 너무 업무적인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귀찮은 일들을 대신 나서서 잘 처리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업무 외적인 일이기에 딱히 보상을 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착한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들은 그에 발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는 고충이 있을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비용이 들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이 충분하다면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한 만큼 되돌려 받기를 원합니다.(어쩌면 착한 사람은 아닐지도)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거나 상처받게 됩니다. 특히 직장은 주고받는 것이 확실해야만 하는 환경이다 보니 더욱 냉정한 기준을 들이밀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이 호구로 보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인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대부분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돌고 돌아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에 대해 경중을 따지지 않고 우선순위 없이 처리해 나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업무만으로도 늘 시간이 부족하고 머리가 아픈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선의에 가득 찬 착한 사람이 직장 동료로서 옆자리에 있는 것은 어쩌면 매우 피곤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언제고 넘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장에서 동료 복, 상사 복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나마 착한 사람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 못되고 이기적인 동료와 함께 일하는 스트레스보다 낫다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저항을 내려놓으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릅니다. 착한 사람 동료를 탓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보상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직장 환경을 탓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선한 일을 하라'는 칸트의 의무론적 도덕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의 직장인인 저에게는 너무나 먼 세상, 너무 높은 수준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