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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Sep 01. 2022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보호받을 권리

성인자녀도 같은 권리가 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인간관계가 있다. 내가 인간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난 다른 사람들이 너무 신기했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나는 내가 보통의 상식을 가지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 다른 생각들에 대해서는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경험한 정말 작은 세상에서 어떻게 이 크고 다양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모하고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부끄럽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때 시작되었고 나와 다른 생각들을 꾸준히 탐구해 나갈 수 있었다. 나 역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존재가 세상에 존재했다.  그것은 '아버지'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나에겐 그저 무서운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모든 걸 희생하는 친구 같은 아버지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만이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책을 사주고 학교를 보내주고 피아노를 사주었다. 피아노는 엄마의 결혼반지를 팔아서 사준 것이지만... 난 감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기에 난 엄청난 지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난 그런 부담스러운 지원을 받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지만 아버지가 기분 나쁠 때, 하시던 사업이 잘 안 되었을 때 타깃은 나였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 되어 버렸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계실 때는 말려주시기도 하시지만 대체로 엄마도 피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두 분의 싸움으로 이어졌으니까. 


난 정말 너무도 괴로운 사춘기를 보냈다. 어떤 날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어 2시간이 넘게 집 밖을 빙빙 돌다 들어간 적이 있다. 그래서 였을까? 부모님의 돈으로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 같아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게 되자마자 난 집을 나왔다. 모든 인연을 끊고 싶었다. 엄마는 가끔 연락했다. 아버지는 내가 허락 없이 집을 나온 것에 대해 분노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순진하게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아직 그가 젊었기에 자녀가 필요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필요해졌다. 엄마랑도 내가 집을 나온 시기에 이혼하시고 남동생은 아버지를 피해 이민 가고 난 엄마를 모시고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다. 계속되는 아버지의 연락과 요구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며칠을 우울해했지만 난 탈출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집을 나왔음에도 괴롭힘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고 자리 잡은 곳에 그가 나타났다. 협박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와 대치하며 싸웠지만 막무가내였다. 내가 그의 자식이기에 이제 자신을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와 이혼한 엄마를 만나게 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집 앞에서 죽겠다고 했다. 이 일이 며칠 전에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난 나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내가 맞아서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거나 일정 기간 동안 계속 괴롭힘 당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난 그의 번호를 차단한 지 오래고 뺨을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알아보고 난 뒤 더 우울에 빠졌다. 난 법적으로 보호받을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난 성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딸이다. 딸이고 싶지 않은데.... 나의 선택권 같은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그에게 폭력을 당하여야만 하고 그것을 증거로 남겨야 하며 또한 그것이 여러 번 되풀이되고 있음을 경찰에 신고하여 알려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너무나 먼,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주하기도 힘든 사람 앞에 나는 도대체 몇 번을 마주하여야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사랑하는 아이가 내 소유가 아니 듯 난 그의 소유물이 아닌데 정작 본인만이 그 걸 모르는 것 같다. 일찍이 집을 나왔을 때 그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을 뿐 미성년 자녀에 대한 보호법이 있듯이 성인자녀 또한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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