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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Sep 14. 2022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부모

성인자녀의 독립선언

이상적인 부모상이라는 것도 그때그때마다 유행처럼 바뀌고 있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시대상에 맞게 변하고 노력라는 것이 정작 무엇 때문인지 이해하고 있는 부모는 불행히도 많지 않다. 그 과정에 있어서 혹은 그저 실수에 지나지 않은 일을 자녀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잘못인지 아닌지 조차 모를 수 있다.(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헛갈리는 것은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시대는 아버지가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시대였다. 어머니들이 발품 팔아 일을 해 음식을 마련해도 아버지는 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석에서 그 음식을 대접받던 시대였다. 그러다 내가 조금 더 컸을 때는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드라마나 광고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의 친구 같은 아버지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때 분위기는 미국에서는 약간 유행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행이 막 시작되는 수입품 같은 느낌이었다. TV에서 나오는 외화가 반 이상이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사실 지금 그 시대를 보면 그때 미국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아버지라는 위치가 현대에 비해서 상당히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시대의 유행이 있듯 시대가 원하는 부모상이 그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의 부모 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되어 온 듯 보인다. 부모의 양육의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라는 말을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독립과 자녀가 원하는 독립에는 그 의미에서 완전한 일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부모와 자녀는 서로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의 대부분은 어린 자녀의 양육을 통해 성인이 된 후에(자신의 방법대로 가 아닌 자녀의 방법을 존중함으로) 자녀가 독립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부모들 나름대로 자녀들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 왔고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자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녀보다 훨씬 많이 알고 경험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부모가 취하는 태도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이라는 '쉬운' 방법을 쓴다. 그것은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위험에서 구해주고 부모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부모 자신이 더 원하는) 삶을 살도록 자녀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권위를 내세운다는 것은 '내가 너의 부모'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다. 혹은 유교의 나라인 유리나라에서 더 나이가 많은 어른을 공경해야만 한다는 분위기에서 부모의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결코 위운 일이 아니다. 또한 부모는 (특히 옛날 부모님 들일수록) 어떤 특권의식을 가지고 계신다. 가족 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부모 자신의 생각과 소망이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전형적인 권위주의적인 부모의 상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대체로 상황에 수용적이며 소심 하고 내성적일 가능성이 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고 성공했던 경험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기질상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원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는 유니콘과 같다. 어딘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려 오지만 자신은 정작 그런 자녀들을 보지 못한 것처럼. '어른스러운 아이'가 진짜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혼자 독립할 수 있는가?




권위적이며 강압적인 부모는 당연히 자녀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본인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가장 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안과 집 안에서의 자신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상처 입히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가 없다. 자신의 가정에서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그들은 자녀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는데도 반항하는 자녀가 이해되지 않고 철이 없어 보일 뿐이다.


부모 자식 간 기대하는 것이 일치하지 못한다면 서로에 대한 상대적 배신감은 가족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은 어떤 한 가족만의 잘못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만이, 미성년 자녀만이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부모에게 상처를 고 그 영향이 평생 토록 미치는 것은 아니다. 성인자녀 역시 두렵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 부모의 어린 자녀로서 정서적으로 독립이 되었는지 아닌지 구별조차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어른의 모습인 우리는 또 어떤 부모의 모습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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