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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Sep 19. 2022

공격하는 부모, 반항하지 못하는
자녀

적당한 반항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적당한 공격성을 가지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나를 지킬 감정의 도구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공격성이 적이 아닌 자녀에게 향한다면 그것은 곧 자녀에게 있어 재앙을 의미한다. 자녀를 공격하는 부모 대부분은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의 공격성이 향하는 자녀가(어린 아이이든, 성인이든) 잘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변명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부모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지배 욕구를 자녀에게서 충족시키고자 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 그것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어도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일 수 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 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고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김희경/이상한 정상 가족>



특히, 우리나라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친권이 강한 나라에 속한다. 그렇기에 함부로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개입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가까운 집에서 울음소리, 비명소리가 들려도 신고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었다가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면 곤란해질 뿐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약자들은 보호받기가 여전히 어렵다. 정말 주먹은 가깝고 법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가족의 경제가 어려워져 갑자기 가족들이 다 같이 사망하는 경우나 학대받는 아동들이 어렵게 도주하여 보호를 부탁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부모들이 자녀를 얼마나 자신의 소유물로만 보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자녀의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더 큰 책임과 의무만이 뒤따른다. 청소년기에 반항은 성장 기니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간다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부모에게 반대하거나 단절하는 행동은 반항이 아닌 '불효'가 되어 버린다. (우리 사회에 이런 낙인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공부를 위해, 직업을 위해, 또는 결혼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해 버린 자녀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공격적이었던 부모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권은 부모의 자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와 같다. 여전히 자녀는 더 잘난 친구들의 자녀와 비교당할 수 있고 자녀의 마음을 알아주기 보다는 부모의 체면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며 자녀의 마음 따윈, 자녀의 형편 따윈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물질적인 도움을 인질로 자녀의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부모도 있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음에도 혈연관계를 이유로 일방적인 부양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다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제 부모는 자녀 자신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녀의 배우자, 손자녀, 자녀의 배우자의 가족까지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반항하지 못하는 자녀는 심리적, 정서적, 물질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완성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비슷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있다. 부모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함으로써 부부가 되지만 그 두 사람이 부모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한 인간으로서 자녀와 같이 성장하는 것도 좋은 이야기지만 반대로 자녀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많은 실수와 또는 실수가 아닌 행동들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아직 부모를 이해할 힘이 없는 어린 자녀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완벽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어린 자녀보다는 어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자녀에게도 잘못했으면 언제든지 사과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면 된다. 자녀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그리고 부모를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한다. 때때로 나는 내 자녀가 나를 과분할 정도로 사랑해 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자녀가 성인이 되어 나와 멀어지고 어쩌면 미워하고 서서히 멀어져 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너무나 가슴 아플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자녀의 애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거나 더 나아가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하는 부모는 사실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공격적인 부모에게서 자라나는 자녀는 끊임없는 죄책감과 낮은 자존감으로(부모의 자녀에 대한 자존감을 깍아내림으로) 삶에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공격적인 부모의 분노를 자신의 내면에 쌓으며 기회가 왔을 때 그 분노를 터뜨릴 수도 있다. (아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만일 자신이 효자, 효녀 말기 병 환자라면 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공격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는 과연 우리의 부모의 영향력 안에 계속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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