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호의는 권리가 아니다.

by zejebell

세상에 이런 무례한 사람들이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출퇴근 길에서 마주치는 이상한 사람들, 우리의 배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우리의 거절을 나쁜 의도로 해석하는 사람, 끊임없이 귀찮게 호의를 구하는 사람 등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나(부모님과 형제들에게 하는 행동을 기준으로)를 착한 사람, 혹은 호구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윗길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호의를 권리로 받으시는 우리 윗길에 사시는 분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어떠한 호의도 먹이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냐는 것이다.


첫째,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인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대부분은 '권선징악'의 결말이 강하다. 나쁜 사람은 끝에 벌을 받게 된다. 아마도 사회가 그렇지 못했기에 사람들의 염원이 옛날이야기 속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문제는 이런 '권선징악'의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충분히 좋은 이야기이지만 사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물론 나쁜 게 사는 것보다 착하게 사는 것이 더 좋고 훌륭한 일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기꾼들 같은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 수 있도록 지혜를 장착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그냥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삶에서 겪는 문제의 절반은 '예'라고 너무 빨리 이야기하고, '아니요'라고 충분히 빠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서 생긴다."라고 조시 빌링스라는 작가가 말했다.


우리가 거절이 어려운 이유는 사회생활에서 거절하는 행동이 예의 없는 행동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싫다는 표현을 하는 순간 나쁜 사람으로 찍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게 하고, 불만 가득한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계산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고구마 장면을 보며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욕을 하며 당하는 사람이 왜 거절을 못하는지 답답해한다. 가족 간에 대신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이나 회사에서 혼자 잡일을 도맡아 하는 직원 등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이용해 먹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그들을 구박하는 모습은 그리 특별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혹은 자신?) 존재하는 모습일 수 있다.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라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는 생각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이 대부분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책임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마음과 거절보다는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나쁘고 잘못된 '악'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 있다면 모두 한 번 종이에 적어보자. 그리고 하나씩 그 상황을 떠올리고 자신이 정말 그 상황에 이용되고 있는지 단순한 오해였는지 한 번 판단해 봐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그 상황들을 하나씩 없애 나가야만 한다. 또한 자꾸 그런 상황을 만드는 '악'한 그들을 거절하고 손절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것은 단순한 관계의 단절을 넘어 우리 생전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절을 할 때는 나중에 하는 것보다 처음에 하는 것이 훨씬 쉽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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