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말자
우리가 새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면 아마도 주변 사람들인 동료나 상사 등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업무에 있어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제대로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호의로 가득해 보이는 그들의 친절한 접근에 그들과의 관계를 거절할 명분이 우리에게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우리들과 관계 맺을 이런 좋은 기회(호구 삼을)를 절대로 놓칠 리가 없다.
처음엔 친절한 그들은 이해심 많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못된 직장상사나 질투심을 가진 동료에 대해 같이 동조하는 모습으로 수다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부모, 친구, 선후배, 동료가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의 친절이 모두 계산적이며 위선은 아닐 것이라 애써 부정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가 멀리해야만 할 관계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거나 한쪽만의 일방적인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증거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 아픈 사람은 우리 일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다른 사람보다 도덕기준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타인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착한 남자, 여자들이 나쁜 남자,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양심'이란 것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평판을 잘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아직 우리의 애정과 신뢰를 얻기 전까지만 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친절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착취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딱히 이유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님을 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적절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선을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선을 넘는 과도한 친절과 접근이 좋은 의도가 아님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인간의 속성 중 하나이다. 그럴 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줄 사람이 주변에 진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혹은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친절을, 애정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힘 또한 스스로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한없이 수용적이기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위선자 일 것이다. 거짓된 친절을 당신에게 베풀면서 당신에게 뭔가를 얻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난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나에게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만 않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은 우리의 이용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렇게 공들여 우리에게 친절과 위선의 가면을 써가며 접근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좋은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애정과 관심, 평판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런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다.
받기만 하고 싶은 그런 욕구를 통제하고 자신이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때만이 우리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의 진정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호의가 계속될 때는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이미 호의는 돼지고기까지 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유 없는 소고기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