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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엘PD Sep 20. 2022

십자가의 도

죽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자리

죽음에 순간에 서보니, 느껴지는 것이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나의 목숨이 끊어져야만 죽음일까? 내 맘대로 손가락 하나, 다리 하나 움직 일 수 없고, 모든 것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것도 죽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무엇을 할 때,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휠체어를 탈 때도 내릴 때도,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그리고 간단한 세안마저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참 비참할 대로 비참하게 난 부서져 내렸다. 


오늘도 한숨만 내쉬는 의사와 전공의 레지던트들,

늘 한결같이 나의 다리를 주무르며 말한다. 

그리고 척수에 염증이 찬 척수염이라는 소견도 들었다.

그리고 그래도 곧 회복될 거야, 걸을 수 있을 거다라고 한 마디 붙이셨다.


나에게 힘을 주기 위함일까? 아니면, 진짜인 걸까?

그저 나는 또다시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와 팔을 보면서 한숨만 쉬었다.  




십자가의 도는 그리 쉬운 도가 아니다. 십자가의 자리로 가자!라는 말을 우리는 참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지만 그 무제를 감당하는 것이 참 어렵다.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것은 죽음이 전제된다. 예수님이 그 자리 가운데 우리의 죄를 대신 가지고 죽어가신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철저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죽음으로 나아가는 자리라는 것, 그러나,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정말 새로운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도 십자가 가운데 정말 죽었다면 우리에게도 다시 새로운 부활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말이다. 오늘 깊은 묵상 가운데,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다. 십자가, 은혜, 믿음 이 모든 단어들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함부로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감사할 뿐, 나도 두렵지만, 이 십자가의 도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따라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도 십자가의 그 은혜를 주일에만 찬양하는 값싼 은혜로 둔갑시키지 말자! 그분의 모든 자를 살리는 그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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