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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엘PD Sep 21. 2022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아,

'외롭게 해서, 혼자라고 느끼게 해서 미안해'

너무 힘든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이제 힘든지도 모르겠다.
뭐가 힘든 건지, 왜 힘든 건지,
이유도.. 원인도..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가정위탁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 어른이 아니어도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려야 했다. 우리에게 어른이 되는 건, 선택이 아니었다. 필수였다. 늘 혼자였고, 중요한 결정도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 마치 어른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힘든 일들은 우리를 찾아왔다. 하루는 먹을 게 없고, 하루는 입을 게 없고, 하루는 잘 집이 없고, 부모님 없는 친구랑 놀지 말라고 말하는 친구 부모님들 때문에 주변에 친구도 없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마음 터 놓을 곳 없이 살았다. 그리고 현실과 경제 사이에서 돈이 절대 권력이며, 돈만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다양한 상황에서 아프며 치이며 사회를 배운다. 그래서 웬만큼 아픈 건 아프다고 느끼지도 못한다. 자립준비청년 모두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닐지 몰라도, 대다수가 그렇다. 위탁 부모 밑에서 자란다는 건, 나에게 가족이 생기지만, 결국 책임도 생기는 것이다. 겉은 다른 가정이랑 같아 보일지 몰라도, 속은 이미 다르다. 그런 우리에게

마냥 버려지지 않아서 행복할 거라고?
그래도 가정이 있는 그곳이 더 낫지 않냐고?


성인이 되면, 그 책임이 현실이 된다. 날 키워주신 위탁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 그러다 위탁부모님이 아프기라도 하시면, 병간호와 치료비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온다. 그리고 친, 인척들은 한 마디씩 거든다. "너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오셨는데.. 네가 책임져야지", "돌아가실 때까지.."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들은 현실이 되어 나에게 또 찾아온다. 그렇게 내 어깨에는 가족들이 올라온다. 그렇게 또 아등바등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시기에, 진짜 물질적 가장이 된다.

필자도 23살이 되던 해, 위탁 부모님이 크게 아프셨다. 수술을 2차례 하셨고, 대학병원에 폐렴으로 2주간 입원도 하셨다. 그때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회사가 끝나면 병원으로 갔고, 병원에서 병시중을 들고, 아침엔 출근했다. 그리고 문제는 병원비, 정말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나왔다. 그렇게 또 모아둔 돈을 모두 병원비로 간병비로 나갔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나를 키워준 나의 은인과 같은 분이니까, 그렇게 처음 영케어러가 되었다. 20살부터 동생과 돈을 모아서 용돈을 드렸지만, 그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필자가 겪고 있는 영케어러의 삶은 언제 또 병원에 갈지, 언제 또 아프실지, 마음 조마조마한 삶이 되었다. 지금도 연락이 오면 마음 한편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이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 할 영케어러의 삶이다.

그렇다. 저렇게 상황이 되면,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진짜 내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계속하게 된다. 심지어 너무나 막막해서, 안 좋은 생각들이 들게 될 때도 있다. 왜 저럴 때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 같은지.. 모른다. 혼자라고 생각이 들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한테만 왜?라는 다양한 질문이 샘 솟구치듯 올라온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마치 눈물샘마저 고장 나버린 것처럼, 그런 나에게 필요한 말은..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아, 괜찮은 척, 어른인 척 안 해도 돼!
다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출처 : Rest_for_i

*혹시 주변에 자립준비청년이 있다면, 다른 것보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같이 있어주겠다고.." 그렇게 말해주자! 너무 희망스러운 말보다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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