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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십니까?

태어난 날 그 이상으로 떠날 날을 깊이

미래로 부터 인생을 돌아보기

삶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


사실 인간은 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지요.

인간은 내일을 향해서

계획도 하고 다짐도 해보지만

살아온 과정은 종종 계획/다짐과는 별개로 드러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은

『바로 “내일(Tomorrow)”이

어떠한 모습으로 “오늘(Today)”로 다가올 것인가?』일 것입니다.


오늘,

과거를 돌아보면서

“참 잘 살아왔다”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평(自評)한다고 하여도,

결국 앞으로 전개되어질 미래가

나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겠지요.


그러면 “내일”

특히 “나의 종말(終末)”이 포함된

“내일(Tomorrow)”은

“내 일(My Work)”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그것은 탄생

즉 출생한 날로부터 죽음의 날까지

더듬어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날로부터 출생한 날까지

거꾸로 거슬러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삶을 조망할 수 있는 태도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할 때

결정적인 관점은

바로 “십자가”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a horse trough)가 의미가 있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에 부활도 의미가 있고

또한 말구유에서의 탄생이

성탄(聖誕)이 되는 것이죠.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법도

마태복음은 28장에서부터

읽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16장에서부터

읽어야 하고

누가복음은 24장에서부터

읽어야 하고

요한복음은 21장에서부터

읽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4복음서를 기록한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탄생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요,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 역시

죽음에서부터 조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서부터

나의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될 것인가?”의 문제 역시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로 귀결됩니다.


공자의 생애주기에 따른 태도는

이런 관점에서 성경과 다릅니다.

그래소 공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삶도 모르는 내가 죽음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대답했지요

그의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생각하고 살아가렵니다.

비록 “죽음의 현상” “죽음의 현장” “죽음의 때”가

나의 손에 있지 아니하더라도

“나의 죽음”에 대하여 기억하는 이들이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아니 나 자신을 위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성웅(聖雄) 이순신은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었지요.


“다 이루었다”고 하셨던

예수님도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었지요.


그럼 나는

어떠한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갈 것인가?

2024년.

이것이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이 고민해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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