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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 세상인데(9)

재개발 한다고 하는데

1970년대 부터 도시재개발과 도시계획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수많은 판자촌, 무허가 건물 그리고 달동네 등

하나둘씩 헐리면서

그 자리에 높고 높은 아파트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저분들은 좋겠다.

 저 거지같은 집 대신에  좋은집 받았으니"

마침 바닷가에서 모래쌓기 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새집을 그리워했으면

이 노래가 동요(童謠)수준을 넘어서

애창곡(愛唱曲)이 되었을까?


하지만 나의 소박한 기대는

안개처럼 물거품이 되어 공중에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새롭게 세워진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헌집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했을 때

이 여파로 세검정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거여동과 성남일대로 강제이주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낡은 집이었지만

재개발(Redevelopment)이란 이름으로

터전을 떠난 사람들은 아파트가 아닌

난민촌(難民村)과 같은 지역에

이주마을을 형성해서 이전과 다름없이

열악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그래서 이후 낡은 집들을 철거할 때가 되면

목숨건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고

이로 인해 생명을 잃은 일들이 발생하곤 했다.

2024 새해덕담한마디에 전시된 캘리그라피  작품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소위 폭력을 동반한 철거단원(撤去團員)들이

용역업체(用役業體) 구성해서 철거를 대행하는데 그  방법은 무자비(無慈悲)했다.

이에 대응하여 전국철거민협의회(全國撤去民協議會)가 구성되어 철거당하는 분들의 편에서서 강력한 농성(籠城)을 전개하곤 했다.


이런 일은 오늘에까지 반복되어 왔다

지금도 재개발을 기다리는 지역들이

매우 많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받았다고 하여

그 다음날 삽질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의 주체는 그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이다.

주민들을 재개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주민회의를 거쳐서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우 지난(至難)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규모의 주민들의 욕구,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

새롭게 건축될 아파트에 입주자격 및 분양계획 수립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야하는데

결코 쉽지않은 과정이다.

그래서 이 과정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도 걸릴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거주하는 분들 중 과연 몇 퍼센트가 신축되는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을까?


추측컨대 약30%정도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결국  70%의 주민들은 그들이 살던 지역을 재개발이란 이름 하에 또 떠나야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돈이 없는  세입자들은 더 열악한 주거환경을 찾아서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2024 새해덕담한마디에 전시된 캘리그라피  작품

최근 청춘주택이란 이름의 제도가 등장했다.

이는 전용면적 60제곱미터 이하의 주택에 대한 전세 또는 월세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또한 물량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Homeless  양산하는 제도가 아닐까  할정도로 장기적으로 주거환경을 안정되게 제공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결국 또다른 난민을 양산하게 되지 않을까?


서울주택도시공사(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2024년 전세임대주택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고 있다.


집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

특히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현주거지를 떠나야하는 세입자들에게는 달콤한 정책이면서 하늘에서 별을 따야하는 정도로 선정되기 힘든 제도이다


세상은 고층아파트 건축과 아울러

도시를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s)

즉 빌딩숲으로 채워지는데

한쪽에서는 집이 없어서 점점 외곽으로

더 외곽으로 밀려나다 못해 자기 땅에서

난민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는 슬픈 역사가 진행형으로

씌어지고 있다.


"저 이번에 선정되지 못하면

 갈 곳이 없어서 자의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70대 후반에 해당되는

어느 어르신의 절규가 지금 내 가슴을

깊이 찌르고 있다.


안타깝다.


세상은 왜 이리 어두워져가고 있는가?

말로는 최첨단시기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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