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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신고(死亡申告)하러 왔어요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새벽 4시 30분.

초여름이지만 동이 떠오르기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아직 네시간 반이 남았다.


TV를 트니

재방영되는 과거 프로그램만이

송출되고 있었다.


책을 폈다.

벤키 라마크리슈난

(1952~,Venki Ramaksishnan)의

"우리는  왜 죽는가?"가

나의 시선을 빼앗는다.

태양이 얼굴을 드러내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순간이라고 했던가?


하루를 시작하려는 찰나

나는 "죽음"이란 단어를  접했다.


"왜 죽어야 하는가?

 죽음조차 숙명이구나.

 나도 죽어야... 아니 죽음을 향하여.."


그리고 카톡을 열었다.

부고(訃告)가 들어왔다.

간밤에 또 한분이 세상을 떠났다!


머지않아 나의 부고(訃告)도

누구에겐가 전달되겠지.


이러저러한 상념(想念)에 몰익하였을 때

이미 아침은 밝아왔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힘차게.

20분정도 달려갔던가?

주민센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사망신고 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나는 안내받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사망신고 하러 왔습니다."

프론트에  앉아있는 담당자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망자(亡者)의 성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필요한 서류 가지고 오셨습니까?

 사망신고서, 사망진단서, 가족관계등록부  기본증명서, 신고자의 신분증이 필요서류입니다."


나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망자는 나  자신입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서류 주세요."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대답은

그에게 아주 낯설은 것이었다.


"망자는 저 입니다."

나는 거듭해서 말했다.

다소 목에 힘을 주고 굵은 음성으로.

갑자기 담당자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사망신고 하러 오셨지요?  맞지요?"


나는 다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저의 사망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살아 계시잖아요?"


나는 " 나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서

제가 직접 저자신의 사망신고를 하러

이곳에 온 것입니다."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아니 살아계신데 무슨 사망신고입니까?

 사망신고를 하시려면  사망진단서를

 제출해주세요."

이젠 담당자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니 내가 죽었다고 하는데

 왜 사망신고를 주지 않냐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왔다니까요?"

우리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옆에 있던 상급자 비슷한 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로 인해

 이리 불쾌하게 느끼셨습니까?"


나는 정중한 자세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저는 어제 죽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의 사망신고를 하러 왔는데

 이해를 하지 않으시네요."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들은 그분은

여유있고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사망신고는 꼭 다른 사람이 해야하나요?

  나의 죽음에 대해 누가 해야하나요?

  그래요. 그렇다고 해요.

  어제 죽은 나를

  전혀 다른 오늘의 내가

  신고하겠다는데 문제가 있나요?"


차분하게 내 말을 들은 상급자는

"이제 이해가 됩니다

  처음엔 저 자신도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의 사망신고만 

  매일매일 접수하고 처리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사망신고를 오늘하고

  내일도 또, 모레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또.

 그렇지 않을까요?

  혹 마지막에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역시 이분은 행정의 달인 같았다.

이제는 내가 이분을 이해해야 할 때이다.

 나의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만났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내가

걷는 이 길은

무엇인가 새로워 보였다,

단순하게 생명이 연장된 것이 아닌

새롭게 태어난 나.


이 아름다운 세상.

의미있게 채워 나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손에는

사망신고  접수서류 한 장이

쥐어져 있다.


그래.

신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나의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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