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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축구공을 향하여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당신의 날렵한  두 다리가

부럽습니다.


외야 한 가운데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작은 공을 바라보면서

다이아몬드를 한바퀴 돌아

끝내 그라운드 홈런을 만들어내는

준족의 당신이 부럽습니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짙은 눈안개가 눈앞을 가리는데

열이 사십도가 되는 딸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빠의 발걸음이 부럽습니다


시끌벅적한 오일장 한 가운데

생존의 치열한 몸부림이 가득한 그곳

가족들을 위해서 더 싸고 더 좋은

식재료를 찾아  가열차게 흥정하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아내의

종종걸음이 부럽습니다.

사당역 출근길

빼곡히 들어선 군중 속으로

한 발 들이대어 기어이 전철 안으로

들어가 군중의 하나가 되어

출근길을  늦지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대  생존의 발걸음이 부럽습니다


방금 막 출발한 버스가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찰나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크게 부르짖으며 달려와 기어코

버스를 세워 탑승에 성공한

그대의 잰걸음이 부럽습니다.


높은  빌당벽을  타고 내려가

온통 유리로 된 창을 작은 동앗줄에

의지하여 건물 이곳 저곳을

우로 오고가며 깨끗하게 청소하는

고공공포증도 이겨내며 살아내는

그대의 건강한 두발이 부럽습니다


철모를 쓰고 자기  몸보다 더 큰

총을 어깨에 매고 얼굴엔 검정숯댕이

완전군장에 흙덩이로 무거워진

군화를 신고 뙤약볕 아래 무리지어

행군하는 나라사랑하는 그대의

힘찬 발걸음이 부럽습니다.

깜빡거리며 숫자는 5.4. 3. 2. 1 로

바뀌는 신호등을 바라보며

거친 숨 몰아쉬며 마치 다음 신호등이

없는 것처럼 힘겹게 달려가

마침내 빨간색으로 전환되는 바로 그 때

횡단보도 끝을 밟는

그대의 발이 부럽습니다


다시 내려올 그 길을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약간의 요기거리가 담긴 베낭을 메고

관악산의 가파르고 거친 언덕을

땀을 쉬임없이 닦아내며 오르고 있는

토요일의 당신  

그 굵은 허벅지가 부럽습니다


유연하지만 활처럼 휘어진 그 허리를

요가매트 위에서 부여 잡아

다시금 고양이 자세를 취하며

세상에서 가장 유연한 몸매를 지탱케하는

가녀린 그러나 강한 그대의 두발이 부럽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한강고수부지를 내달리는

하이킹족들의 빠른 패달을 밟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검은 안경을 쓰고 완전무장을 한 채

아침공기를 가르는 건장한 두발이

무척 부럽습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어떤 반응도 없이 내 몸에 매달려

나의 신체 일부분이 된  힘없는 두다리를

말없이 응시하면서 그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뇌까립니다.


부 럽 습 니 다.


그 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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