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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3)

1인층으로 전개하는 예수의 이야기

<구원의 때를 기다리는 땅>

우리는

이집트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히브리 민족의 신음소리

귀를 기울여야 했다.


또한 로마 치하에서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의 고통에 주목해야 했다.


이들이 겪는 고난은

단지 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처한

동일한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저들의 신음소리와 고통으로 인한 분노는

방향을 잃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한 순간도

그 곁을 떠난 적도 없었다.


저들의 아픔은

우리들의 아픔이었고,

저들의 고통은

우리들의 고통이었다.


이제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사람으로

저들에게 나아갈 때이다.


<마리아의 결단과 수용>

마리아!

그 이름은 너무 흔했다.


숱한 마리아 중 단 한사람이 선택되었다.

아직 혼인하지 않은 그 여인.

마리아.


"왜 내가 되어야 합니까?"

그녀는 묻지 않았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니.


게다가 온동네 알릴 수도 없고

도리어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수치스러운 일이 하지만

결코 부끄럽지도 않고 자랑을 넘어

거룩한 일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마리아 자신이라는 것이.


마리아는

정혼한 남자 요셉과 함께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런 마리아를 선택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메시아 품기를 기대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젊었다.

그녀는 희망을 가득 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지 이미 600년.

마리아가 호흡하는 땅은

로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것으로 끝났다면.


젊은이들은

파란 하늘 아래에서

어두운 하루를 가녀린 숨을 내쉬면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길 때,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엉터리 왕을 세우고

그 밑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자신의 의(義)를 내세워

다른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마리아는

다른 청년들과 같이

그러 저러한 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기다림이 있다면,

아니 이미 희미해진 기다림이지만, 하늘에서

메시아( מָשִׁיחַ )가 내려 오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많은 여성들은

"내 몸에서 메시아( מָשִׁיחַ)가 잉태되기를" 막연하게 기대할 뿐이었다.


간절함과 순수함,

순결함과 신실함.

마리아는

이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마리아를 이미 선택했다.


빛을 잃어버린 세상에 빛이 통과할 통로는

마리아 같은 사람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마리아.>

마리아는

왜 메시아를 잉태하는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을까?


단지 주어지는 숙명이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순응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은

수동적 용납이 아니라

능동적 결단에 근거해야 했다.


마리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나라 없는 현실을

그저 그렇게 즐길 수는 없었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온 몸에 알 수 없는

수많은 호수를 통과해

들어오는 수액(輸液)에 의지해

연명하는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꺼야."


역사와 함께 고민을 하지 않고

그 고통을 무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선택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에게 음성이 들려왔다.

"너를 통해 한 아기가 태어나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마리아는

"Why Me?"라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목 마른 사슴이 목숨을 걸고

한 모금의 물을 사모하듯이

기다려왔던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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