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버려 두세요(9)

엄마의 전화와 영숙이의 적극적 대응

원장실로 걸어가는 두 친구의 발걸음은 완연히 달랐다.

명희의 발걸음은 제법 가볍고 빠른 속도였다.

영숙이는 처지는 듯, 힘없는 지렁이가 마른 땅을 헤집고 다니듯한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속도로 걸어와 이미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명희는 원장실 안에서 어느 소리도 나기 전에 문을 활짝 열었다.

"선생님 저희들 왔어요."


원장은 반갑다는 듯이 다가오면서 "영숙이도 왔구나."하고 반겨준다.

"명희야 지난 번 네가 부탁했던 책이 여기 있다."

명희에게 책을 건넨 원장님은 영숙이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지난 번에 내가 부탁한 것 있지? 기억하지? 아직도... 생각이 .."


명희는 "영숙이는 이미 원장님을 뵈었구나? 선생님.. 우리 영어 노래 배우고 싶어요."라며 원장으로 부터 받은 책을 만지작 만지작거린다.


"영숙이도 괜찮아? 그러면 같이 하고... 사실 같이하면 더욱 즐겁고 힘이 나지"

영숙이는 "저는 영어 못해요."라고 명희를 쳐다본다.

원장은 "영어 공부가 아니라 노래를 하는거야."라고 하자 영숙이는 "노래도 못해요."라고 한다.

원장은 "우리가 가수 될 것 아니니까....그냥 노래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해"라고 하자

명희는 "좋아요. 좋아.. 영숙아 우리 같이 하자."라고 영숙이를 채근한다.


원장은 "You raise me up!"이란 노래가 담긴 악보를 꺼내서 두 친구에게 건넨다.

"여기 악보에 영어가사 아래 보면 한글로 읽을 수 있도록 써놓았어. 시간되면 소리내어 읽어보고, 뜻도 생각해 봐.. 도움이 될 꺼야."


약 1시간정도 세사람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영숙이는 놀랐다. 원장님이 건네 준 악보를 잡은 손이 자신도 모르게 더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러지.....'


방으로 오는데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영숙아 전화왔는데.. 받을래?"

분명히 엄마로 부터 온 전화라고 생각하고 영숙이는 "안 받을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영숙이가 알고 있는 엄마는 매우 연약하다.

직업을 가질 생각도 없고, 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딸인 영숙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새 아빠의 눈치만 바라보며 아빠의 횡포에 묵묵히 순응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영숙이는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원장님과 처음 만난 날, "영숙이 무엇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너무 낯설고 당황해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느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던 그 질문.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


이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사무실에서 다시 "이번에는 전화받아야겠다."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영숙이는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으러 갔다.

"여보세요..."

영숙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너...나와 인연을 끝내겠다는 거냐?... 왜 전화를 안받아.....

아직도 너 정신차리지 못했어?..."

쉬임없이 쏟아지는 엄마의 말에 영숙이는 대꾸도 못하고 그저 전화기만 들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높이가 조금 낮아지자 영숙이가 입을 연다.

"엄마.. 제발 나를 내버려두세요. .전화하지 말아요...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가장 보고싶지 않는 사람이 엄마에요. 전화 끊어요."

처음이다.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낸 영숙이는 총알같은 속도로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영숙이의 호흡은 매우 거칠어졌다.

회오리 바람이 휘몰다 다시 멈췄다 또다시 거세게 불듯이 영숙이의 호흡은 진정될 줄 몰랐다.

벌벌 떨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잡고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발 나를 내버려두세요."

영숙이는 자기가 한 말을 곰곰히 씹고 또 씹으면서 반복해서 뇌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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