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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The Sabbath day)의 주인은?

1인칭으로 전개하는 예수 스토리

<안식일은

누구를 위해 세운 날인가?>

안식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안식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이유로

쉴 필요도 없는 자신들이

쉬어야겠다고 하고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쉼을 강조하고 있다.


십계명에서 안식하라는 것은

쉴 수 없었던 근로자, 하인, 여인,

아동들에게

쉼이란 축복을 허락하는 것이다.


땅 주인들에게

안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늘 일을 시키면서

늘 쉬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에게는 안식이 아니라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허락했을까?


나는 제자들과 밀밭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허기가 찾아왔는지

제자들이 손으로 밀대를 훑어서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예리했다.

"아니 안식일에 노동을 하다니?"


제자들이

밀대를 훑어서 허기를 조금 채운 것이 문제라면

저들은 집에서 가만히 있어

이러한 지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저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나는 저들이 알고 있는

다윗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다윗과 소년들이 배가 고팠을 때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지성소에 차려놓은

떡 진설병을 다윗에게 준 것을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냐?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성경을 잘 모르냐?"


저들은 순간 멈칬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안식일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쉬기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했는가?


자세히 보라.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자,

지나친 노동에 쉼을 얻지 못하는 자,

그들에게 쉼을 주기 위하여

세운 계명이 안식일이다.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을 허락한 것이지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규칙도 만들고 법도 만드는데

왜 너희는

그 규칙과 법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려 하느냐?"


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하여

법을 들먹거리는 사람들.


자신은

그 법에서 다양한 이유를 들어서

피하려고 하는 자들.

"나는 예외야"라고

내로남불을 외치는 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저들은

이 사실을 가르쳐주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을까?>

또 다른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쉬고 있었기에

상점도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가능하면 최소한의 이동도 자제했기에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발걸음을 움직여

회당으로 들어갔다.


회당 안에서

한 쪽 손이 말라서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에서 있었던 논쟁을

분명히 기억한다.

저들은

나와 손마른 사람과의 관계 보다

"예수가 안식일에

또 무엇인가 일을 저지르겠지?"

더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아마 저들에게는

나를 향해 무엇인가

율법에 저촉된 일을 찾아서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을거야.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가

악을 행하는 것이 옳은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은가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악을 행해야 하오, 사람을 죽여야 하오."

이렇게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율법에도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금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저들은 말을 하지 못할까?

이 사람의 한쪽 손이 마른 것이

생명과 관계 없다고

왜 말을 하지 못할까?


이런 관점에서

저들은 한심한 존재들이다.


얕은 지식으로 사람을 고소하려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사실 이 사람은

조각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집안의 식솔들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동안

힘이 없어진 손으로 인하여

직업을 갖는 일과 생계를 갖는 일에

장애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남자 구실을 못하는거야!"라는

손가락질도 받았으리라.


생명이란 단지 태어나고

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거반 죽은 것이나 매한가지인 삶"

살고 있었다.


내가 행하는 일은

이 사람은 "손 하나"를 회복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사람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직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살 맛이 나는"

그 경험을 되살리고

가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회복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진정 통전적 생명(Total Life)"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이제 회당 구석에 홀로 앉아있던 모습과

전혀 다른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그는 회당을 떠났다.


한 사람이 생명을 회복하자 또다른 모의가 시작된다.

"예수를 어떻게 해야

처단할 수 있을까?"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도 못하면서

나의 뒤에서 수근수근 거리면서

나를 어떻게 할까를

분노하면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래 그것은

너희의 일이고 나는 내일을 계속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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