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치유 어느 것이 쉬울까?

1 인칭 시점으로 전개하는 예수 스토

<용서와 치유

어느 것이 쉬운 일일까?>

어느 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

북쪽의 갈릴리 남쪽의 유다 등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러 왔다.

그 중에는

율법교사들도 함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이들은 배우는 일에 열심이 크다.


율법을 연구하면서 궁금한 것을

나에게 들으러 온 것을 보기만 해도

아직 이 땅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집 밖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집 안에까지 들려올 정도이다.


강론이 한 참 진행된 즈음

돌연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지붕에서 나왔다.


각종 먼지와 건축자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들것에 실린 한 사람이

지붕에서 내려왔다.


잠시 후

네 명의 친구가 함께 내려왔다.


나와 강론을 듣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놀라면서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여기저기에서 소란이 일었다.


나는 네 명의 친구믿음을 보았다.

'그래.

믿음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

믿음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 더 이상 "너희들은 나를 믿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사지마비(παραλελυμενος,

who was paralyzed)된 친구가

건강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나는 먼저 선포했다.

"너는 죄 사함을 받았다."

(αφεωνται σοι αι αμαρτιαι σου)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생겼다.

일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데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이들의 생각과 말은

"용서"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정죄(Condemnation)" 도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정죄하는 일을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가?


나는

사지마비된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시선을 옮겨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바라보았다.


"죄를 용서한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쉽겠는가?"


저들은

이 사람이 사지마비된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건강한 것은

"자신의 의" 때문이라고

간주했을 것이다.


정죄는 하면서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 하나님에게 속해있다고 하면서

보다 쉬운 일, 정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던 사람들.


그러나 나는 말한다.

하나님은

누군가 너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죄를 용서한 만큼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지만

그 용서를 받기 위해서

너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을 용서하는 권한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죄보다 용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사지마비된 사람에게 명령했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

들것에 누워있던 이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기가 누웠던 들것을 손에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집으로 갔다.


내 말씀을 듣고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크게 놀랐다.

함께 하나님과 영광을 돌렸다.

"정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용서"하는 마음이다.


용서하는 권리를

인자(The Son on Man)에게 주셨다.

사람의 아들,

바로 너희들에게.


너희는 용서하고 있는가?


<마태의 결단>

길을 걸어가는데

세관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레위 족속에 속한 사람이다.

레위 족속이라 함은

대대로 제사장이 되는 혈통이다.

그런데

그가 로마제국을 위한 직책인

세금징수원으로 일하고 있다니.


그는

자신의 직업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속한 친족 사이에서

특히 가족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을까?

나는 그를 불렀다.

"나를 따르라(Follow me!)"


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다 버리고 나를 따랐다.

그래 제자란

이렇게 순종하는 자들이 되는거야

따지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전적으로 나를 따르는 자.


그는 나를 데리고

잔치을 벌이는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많은 세리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때 그곳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토커인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십니까?"


바리새인과 죄인들은 식사자리에서 까지

나를 혐오하는구나.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적이 아니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저들은 이 말을 듣고 또 오해하리라.

"아하 내가 의인이구나!

"그렇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고

정기적으로 검진하지 않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의술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한다.


과연 이 사람은 건강한 사람인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지만,

아주 심각한 죄인이라서

스스로 "나를 구원할 자는 세상에 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는

의인인가? 죄인인가?

차라리

"당신은 지금 병원에 가 봐야 합니다."라고

말을 들을 때

"나 같이 건강한 사람에게

왜 병원에 가라고 강요하나?"라고

항의하기 보다

"그래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서

정확히 체크해야 겠다."라고 대답한다면

진실로 누가 건강한 사람인가?


"당신은 죄인이요!"라고 지적을 당하면

"나 같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라고 한다면,

그는 구원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래 하루에도 세 번씩

나 자신을 돌아봐야지

누군가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적은 없는지

누군가 내가 돕지 않아서

괴로움에 처한 사람은 없는지

누군가

나의 위로가 필요한 적은 없는지

나의 격려를 필요로 하는지"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구원이 가까우리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나의 말을 듣고도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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