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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로 걷기 시작하다

머리가 하늘에 닿다

어머니 등에서 공중살이를 하며서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 전까지 땅을 떠날 수 없는 나는

땅을 한번도 밟아본 적이 없었다.


잠시 유모차를 통해서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이 되어서

비로소 목발을 짚고 서게 되었다.


어느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수색이란 곳을 처음 방문했다.

전차(電車)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서

잘려나간 경의선(京義線)을

따라가다 보면

수색(오늘날 수색동, 水色)이란 곳이

나온다.

1970년대에는

의수족보조기(義手足補助機) 판매상이

신문로에 즐비했었는데

아버지가 왜 수색을 찾아갔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랜시간

집을 떠났다.

그곳에서 목발이란 것을 구입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자 이제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서 봐라."

이때 처음으로 두발로 서서 걷는

직립원인(直立猿人)이 겪는

두려움과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다.



언젠가 영화에서 구봉서 선생님이

시골아이들에게 두발자전거가

어떻게 굴러갈 수 있는지에 대해

동전을 떼구르르 굴려가면서 시범을 보이시던

바로 그 장면이 떠올랐다.


힘도 없는 두다리가

생전 처음 목발에 의지해서

하늘 가까이 다가간다는 일은

매우 도전적이고 위험한 일이었다.


드디어 비틀거리며 섰다.

네발로.

순간 겨드랑이 깊이 파고드는 고통이

살갗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여리디여린 피부를 짖이기며

순식간에 진물을 자아낼 정도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아! 하늘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겠구나."


며칠동안 반복적으로 넘어졌는지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돌연히

나는 네발로 서서 길을 다니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기(toddler)가

두발 서다가 뛰듯이 뒤뚱거리며

걸어가듯이 나는 아홉살이 되어서

걸어가는 법 아니 직립으로 서서

하늘을 만끽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그렇게 가깝던 땅이

나의 시선(視線)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아... 저기... 내 두발 아래에

흙이.... 땅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감격을 누가 알까?

누가 나처럼 새롭게 느끼며 감격하고 있을까?


사실 슬쩍 주변을 돌아보면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日常,ordinary)"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그토록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나에게는 기적(miracle)같은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늘은 가까워지고

땅은 조금 멀어지고

삶은 세워지기 시작했다

비록 목발을 의지하지만

독립적인 삶이 나에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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