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을 짚고 학교를 다니면서 겪는 고통들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은 매우 어두웠구요.
아침에 눈을 떴으나
순간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하며
다시 눈을 붙이려는 순간.
이미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친 누님은
소리쳤습니다.
주섬주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빗소리는 땅에 떨어져 다시 물방울이 되어
튀어 올랐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하수구(下水口)에서
물이 조금씩 솟구쳐 오르고 있었지요.
재촉하는 친구 목소리를 듣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보다 가방은 소중했습니다.
줏어온 커다란 비닐로 가방을
둘둘 마르고 싸고 또 쌌습니다.
친구가 씌어준 비닐 우산은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100미터도 가지 못한 채
우리 둘은 비에 완전히 사로 잡혔어요.
친구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어요.
노래를 아시나요?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보다 님 발자국소리
차라리 주룩주룩 내리길 바라면서
학교로 가는 길이 되었지요.
목발을 짚고 비를 맞으며 학교로 가는
중학생의 등교길을 상상해 보셨나요?
이젠 눈이 내리는 날을 상상해볼까요?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어느날,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열정적인 가르침보다
하얀 눈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일에 몰입하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그려보는 모습과는
전혀 상이한 그림을 나는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점심시간이 지나고 종례시간이 다가오는데
눈은 멈출 줄 모르고
온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버렸습니다.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천국같은 설국(雪國)의
왕자들이 된 듯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교실로 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나는 중력(重力)을 기대하며
가능한 한 목발을 눈 속 깊이 쳐박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얀 눈 아래 세상은
도무지 한치 밑도 가름할 수 없는
미지(未知)의 세계였습니다.
어느새 내린 눈은 얼어버렸나 봅니다.
살짝 살짝 미끄러움이 목발 아래
고무바킹을 통해 전달되어
목발을 짚은 손을 통해 전달됩니다.
순간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정수리를 거쳐 흘러내렸습니다.
아직 집으로 가는 길은 먼데.
눈은 머리 위로 쌓이고
검정 교복 위에 쌓이고
가방 위에도 쌓였다가 흘러내리고
또다시 그위에 쌓여갑니다.
비틀거리며 신경은 곤두서서
나는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15분 정도 걸려서 기어갔습니다.
청파동을 내려와 효창동으로 나아가는
그 길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종종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그 하얀 세상에 나혼자 버려진 듯
아니 던져진 것 같았습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포가 임하는 것을 소스라치게 느낍니다.
힘들었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어갔지요.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몰라요.
미끄러지면서 다시 일어나야 했지요.
그자리에서 멈춰버리면
나는 얼음왕자가 아니라
얼음기둥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지요.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까요?
그때 그 순간에는 정말 그랬습니다.
두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응.,., 왔어? 힘들었지?"
적어도 이 정도 이야기는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집은
고요했습니다.
아무런 메아리도 없었습니다.
"후우... "
그저 한숨소리만이 내 속에서
흘러나왔을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