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준은 달랐다
중3학년 2학기 말이 되었다
입시 제도가 있었던
이 당시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친구들은 학원을 다닌 것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6개월 전부터 독서실 예약해서
공부를 하는 일이 상식이었다.
나는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누구처럼 과외를 받은 적도 없다.
9식구가 한 공간에서 살아왔기에
고등학교 입시를 앞에 둔
막내동생을 위해서
준비된 공간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누님이 돈도 없으면서
독서실 일주일 동안은
다녀야 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난생 처음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밤을 새면서 공부를 했다.
알고 봤더니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은 터줏대감이었다.
어쨌든 나는 일생일 때 단 한 번의 기회 독서실에서 나름대로 공부 전념했다.
문제는 어느 학교에 원서를 제출하는가?
이미 다른 친구들은
자기 성적을 기준 삼아
서울 시내 어떤 학교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경기 경복 서울 용산"
이것이 당시 일류 고등학교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용산고등학교다.
그런데 이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20분동야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5분동안 가고
다시 40분동안 걸어가야 된다.
목발을 짚고.
어머니도 안 계신 우리 집
이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기대할 수 없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나에 대한 교육적 동기가 강하지 않았다.
우리집이 막내를 위해
용산고등학교 근처로 이사가길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이런 나의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그런 의지를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다른 친구들은 성적순(成積順)으로
가야할 학교를 정할 때
결국 S상업고등학교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지요
이렇게 나의 미래는 결정되었다.
"상업고등학교에 가게되면
대학에 갈 수 없잖아요?"
대학교에 가고 싶었던 나는
마지막 투정을 부렸다.
"상고(商高) 나와서 직장에 가려고 할 때
면접을 보게되면 불합격되겠지요
그럼 상고졸업이 의미없잖아요."
"아니야 상고이지만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진학반은 고3학년 일년만 운영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3년간 진학공부를 하는데
나는 단1년동안 대학입시준비를
해야했다.
나의 인생의 걸음걸이는
다른 친구에 비해 대학에서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