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합격자 발표를 보고나서
하는 수 없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었지요.
먼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전국중학생들이
동일한 시험문제로 거사(巨事)를 치루게되요.
시험이 끝나면 당일 저녁에 TV를 통해
문제풀이가 방송되고
그 다음 날 일간신문에 시험지전문이
게재되지요.
그러면 온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시험지 채점에 들어갑니다.
수험생 당사자는
기억을 더듬어서 채점을 하는데
여기에서 희한한 일이 발생합니다.
채점한 결과는 185점이 되었는데
실제결과는 174점으로 나와서
슬픈 표정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지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상업고등학교 합격을 받고
2차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추가로 접수해야겠다고.
2차가 되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녀야겠다고.
오후가 되었다.
방에서 엎드려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목조(木造)로 된
일본유곽(日本式遊廓)이어서
온돌방이 없고 방 한가운데
연탄난로가 놓여있었습니다.
난로 위에는 겨울의 진미
김치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버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뿌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느낌이
두다리 위로 가득 엄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난로 위에 있는
김치찌개를 연탄 부지깽이로 옮기려다
결국 김치찌개가 기우뚱하면서
나의 두다리 위로 엎어진 것입니다.
소아마비 걸리기 전
비지가 펄펄 끓는 가마솥 안으로
두다리가 빠져 화상을 입은 후
약14년 만에 다시 화상을 입게되었습니다.
나는 뜨거운 화기(火氣)가
두다리를 뚫고 깊이 스며드는 순간
어떻게 하지"
섬광(纖光)같은 생각이 뇌리를
번뜩이며 스치고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캄캄해졌습니다.
두다리는 시뻘겋게 달궈지고
아버지는 당황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채
바닥에 엎어진 김치찌개를
두손으로 줏어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내다리를 보며서
슬픔에 잠겼습니다.
첫돌지나서 화상(火傷)을 입어
소아마비에 걸렸던 것도
아버지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는데
그 죄의식을 아직 떨치지도 못했는데
나는 누워서 무엇을 어찌 해야할 지
도대체 알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