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견뎌야 했습니다
집에서 나와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롭게 가야할
고등학교를 향해 걸었습니다.
사실 이 고등하교는
내가 다녔던 중학교와
연결된 상업고등학교입니다.
그래서 이 학교로 가는 길은
이미 중학교 3년동안 익숙해졌기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한 발, 한 걸음 나아가는데
3월 초이틀
아직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초봄의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온몸은 진땀으로 적셨습니다.
학교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나자신에 대한 의구심반
그래도 가야한다는
이 두가지가 뒤엉켜서
나의 가야할 길을 재촉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학교까지 걸어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도착한 곳이 학교였지요
신입생은 강당으로 모였습니다
강당으로 가니
의자는 하나도 없고
모두 서 있는거에요.
나는 재활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두다리가 아직 회복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불완전한 상태로
두시간 반동안 걸어왔고
이제 또 서서 입학식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니
다시 큰 소름이 끼치는 것이에요
사실 나는 한번도
교정이나 강당에서 단체로 하는
조회나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체장애란 이유로
늘 교실 안에 있어야 했지요
"우리 갔다올께. 부럽다
우리도 너처럼
교실에 있으면 좋을텐데
우리 가방 잘 지켜줘!"
늘 이런 식이었지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런 경험을 갖고 계신다면
공감이 많이 될 것입니다.
결국 생전 처음으로
네발로 서서 강당에서
행사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땀은 옷 속으로 흐르고
목발을 짚고 있던 두팔에는
쥐가 나서 꼼짝달싹 할 수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訓話)가 끝나고
거의 한시간 반이 지나서야
입학식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배정된 교실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비틀비틀거리며
낯선 아이들과 함께
교실로 향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나만의 고통스러운 입학식이
진행된 것입니다.
고등학교 첫번째 담임 선생님
새로운 짝꿍과 교과서
모자와 교복에 부착해야 할
버클과 1이란 숫자의 단추.
나는 이를 뒤로 햐고
첫번째 종례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발은 이미 집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지요.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