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정학 받을 위기에 처하다

덕수궁에서 시를 발표하다가

회장이 되고 나니

해야할 일이 많았습니다


일년에 두번

즉 상하반기에 한번씩 야외에서

작품발표회를 갖게되었지요.

이 때는 "샘" 선배들도 함께 참석해서

후배들의 역량강화를 고취시키는

선배와 후배와의 뜻있는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10월의 어느날.

아마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이었을거에요.

우리들은 덕수궁(德壽宮)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약40명 정도의 학생이 모여서

등나무가 얼키설키 지붕을 아우른

정자 아래에 모여

교복입은 채로 둘러앉아

시(詩)와 수필(隨筆)을 낭독을 하며

선배들은 피드백을 주면서

고상한 모임을 갖고 있었지요.


한참 뜨거운 토론이 절정에

도달할 즈음이었지요.



완장을 차고 순시를 하던

중년남자 셋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우리들의 관동성명을

적으려고 하였습니다.

회장인 나는 목발을 짚고

그분들 앞에 다가가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남녀학생들이 모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선배들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실 선배라해도

이들의 나이가 22-23세 밖에

안되었기 때문이니까

그분들 눈에는

참 어려보였겠지요.


이상한 것은

그분들 중 어느누구도

회장인 저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목발을 짚은 모습을 보고

무시하고 넘어갔나 봅니다.

"저 이 모임의 회장입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분들은

주의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무시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 등교를 하니

함께 참석했던 두명의 후배에게

일주일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유기정학(有期停學)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속이 매우 상하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타학교 샘 회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염려와 불안으로 인해

약2주일간 공부도 손에 잡히지도 않고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타교학생들에게는

훈방조치(訓放措置)만 내려졌고

우리학교 후배들에게만

유기정학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후에 후배들은 나에게 다가와

"선배님 걱정하지 마세요

별것 아니니까요."라고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이런 조치들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