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을 넘다니

문학의 밤을 실시하면서

2,3주가 지나자

정학받은 일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지요.

우리는 곧장 문학의 밤

준비에 들어갔어요.

고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적은 돈으로 회비를 모아서

매주 이용하는 회관 월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외부 사람들을 모시고

일 년 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작품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된 거죠.


지금은 대학로라고 하죠.

70년대에는 바로 그곳에

서울대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근처에

가톨릭 학생회관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그 동네에선

제일 저렴한 비용으로

빌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직 빈 공간만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문학의 밤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조명, 앰프, 마이크, 백 뮤직을 위한

음향기기와 LP판, 녹음기 등이

있어야 했는데

이 모든 것을 자력으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이외에도 실내 장식과 청소

포스터와 각학교에 보낼 홍보전단 등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요.


요즘과 같이

컴퓨터, SNS가 발달했다면

이러한 준비를 하는데

약70%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요.


그렇다고 고등학생 신분과 능력으로

돈을 주고 임대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선배들의 찬조가 있었고

특별회비를 조금씩 거두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갔지요.


마침 정학을 당했던 후배들은

학교 방송반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LP판과 이동용 전축은

준비를 할께요. 방송실에 있는 것을."


"아니 어떻게 학교 바깥으로

옮기려고 하니? 위험해."


"담을 넘으면 되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 주민센터 입구에 진열된 장식품



문학의 밤을 준비하는데

시나 수필 등을 창작하고

발표를 위해 낭송(朗頌)하는 연습에

집중해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요.


당시 교회에서도 문학의 밤이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10월~11월은 교회 문학의 밤을

구경하기 위해 순례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교회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교회 문학의 밤 준비는 너무 쉽다.

장소있지. 음향기기와 조명이

이미 확보되어 있지.

그저 우리는 발표연습만 하면 되는데."


그랬습니다.

교회 밖 문학의 밤 준비는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와

매한가지였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사실 중도에 그만두려고도

했었지요.


"우리 10년의 샘 전통!

이렇게 멈추면 안되지."

도대체 전통이 뭐라고.


지금 돌아보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샘이지요.

물이 말라 샘의 흔적도 찾기 어려운

그래서 이런 추억에서나 읖조릴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영속(永續)할 것 같이

생각했지요.


드디어 1974년 11월 25일(월)

저녁 7시.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계곡을 건너고

광풍이 이는 거리를 질주하여

문학의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마이크 앞으로

어그적어그적 걸어나갔습니다.

캄캄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조명이 비추어진 무대 위

목발을 짚은 회장에게 집중되었지만

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에

빛 가운데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인사말을 전하지?

독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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